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하신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듣는 마음, 순종하는 마음이 준비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강퍅하지 않은 마음이다. 사람이 들으려 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말부터 다르다. 그리고 사람은 간절하지 않으면 겸손해지지도 순종하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사고하게 하셨다. 자신에게 주신 사고하는 능력으로 세상을 볼 때 마음이 강퍅하지 않다면 세상의 모든 집을 지은 이가 있듯이 세상도 지으신 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마음을 강퍅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고집한다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고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에 반하여 스스로 안에서 사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시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므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에 순종하므로 그 음성이 말씀이 되어 자신의 삶을 주관하게 되면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반대로 삶의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마음이 강퍅한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자기 삶이 평안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적어도 한 분야에 안식한다는 것은 더 이상 수고하지 않아도 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한 수고와 대학교수로서의 연구활동은 다른 것이다. 되기 위한 수고는 교수라는 자리의 안식에 이르지 못한 것이고, 교수로서 연구하는 것은 교수라는 자리의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인생을 이 관점에서 보면 인생에 의미를 찾은 사람의 삶은 안식을 누리는 것이고,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모든 순간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은 안식이 없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 삶의 모습과 수고의 모양은 같아 보일지 몰라도 이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와 예수님의 자이만큼 극명하게 다른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저주로 벌로 규정하시는 것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수고하도록 하신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것은 선악과를 먹은 불순종애 대한 대가성 벌이 아니라, 자신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가진 존재의 숙명이다. 자기 안에 있는 선악의 기준이 남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도 끊임없이 판단하기에 선악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그 판단에서 선한 자리에 이르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안에 선악의 판단 기준으로 사는 것이 바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안식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며 그 둘은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안식하는 존재가 되려면 하나님의 음성 앞에 강퍅한 마음을 버리고 순종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의지나 신념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과 육신 가진 인생에게 주신 사고와 선택과 인지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보면 너무 쉬운 것이다. 유일하게 이것을 방해하는 것은 육신의 평안이다.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는 것은 육신의 수고가 수반된다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육신의 정욕이고, 그 육신의 정욕이 이끄는 평안의 기준은 선악의 행위에 대한 반대급부에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이 생각하는 선한 행위를 공로로 쌓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음이 강퍅한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 온 세상과 육신에게 주신 역량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은 모든 것을 목적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목적대로 순종하는 관계는 온전하다. 모든 부품이 설계자의 목적대로 작동하는 기계는 언제나 온전하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만드신 인생의 삶이야 말한 것도 없다. 그 온전하고 평안함이 바로 하나님의 안식이다. 자신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가 회복되어 있으니 그것이 안식이다. 그 안식을 누리는 사람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아 보여도 십자가에 달린 강도와 예수님이 다른 만큼 다르다.


오늘도 자기가 생각하는 선함을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예수님을 닮겠다고 노력하며, 더 나은 신앙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든 수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수고가 안식이 없다는 이름표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표가 붙어 있다는 것은 마음이 강퍅하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이 이끄는 선함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사람은 안식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셨으니 안식 없는 수고에 매몰된 삶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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