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5:1-9) 평강이 되시는 그리스도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9. 27. 00:27 Writer : 김홍덕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에서 나는 아이가 우리에게 평강이 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당연히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the Christ이신 예수님께서 평강이 되시듯 그의 본성으로 거듭난 a christ 역시 그와 같이 평강이 되신다는 의미이기도 함.)


이 평강의 왕이 앗수르 사람과 니므롯이 우리의 땅과 궁들을 침략할 때에 물리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땅은 표면적으로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땅이겠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본질적 행간은 바로 우리 사람의 심령입니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신 하나님과 그 의가 거하는 성전이자 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앗수르와 니므롯이 쳐들어왔다는 것은 우리 심령에 앗수르와 같은 본성, 니므롯과 같은 본성이나 유혹이 들어와서 우리를 어지럽게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 우리를 평안하게 하고 이를 물리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볼 때에 나에게 의미 있는 말씀이 됩니다. 이 말씀을 단지 미가 선지자가 살던 때의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면 내게 큰 이익이 별로 없습니다.


앗수르와 니므롯은 상당한 연관이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앗수르를 언급하는 것은 다분히 사마리아가 야곱의 수치라고 언급한 것과 연관된 것입니다. 그리고 니므롯을 언급한 것은 앗수르가 혼혈, 곧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세상의 가치관이 간음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니므롯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건설한 왕이자, 이방민족 최초의 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바벨탑의 주역이라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본질은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그것을 쌓아 하늘에 이르자는 것에 숨어 있는데, 벽돌을 만든다는 것은 벽돌을 만들 때 볏짚을 넣는다는 점에서 사람(흙)이 그 자체로는 하늘에 오를 수 없다(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가치관을 가졌기에 사람에게 어떤 것(볏짚 등)을 더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사마리아의 혼혈정책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벽돌을 쌓는다는 것은 사람의 공적을 쌓고 쌓아서 하늘에 이르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의 공로를 쌓아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미가 선지자는 그런 가치관의 상징으로서 니므롯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앗수르와 니므롯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면 하나님이 만든 사람 그대로는 안 되고 세상의 가치관을 혼합하고, 공로를 쌓아야 한다는 신앙관, 가치관의 상징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가진 그런 가치관은 사람의 마음을 전쟁이 난 것과 같이 혼란스럽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겨 더 높은 곳으로 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 사이에도 전쟁과 같은 갈등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강이 없는 상태이고, 예수님이 평강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본성, 가치관, 신앙관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앗수르와 니므롯이 침략할 때에 하나님께서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서 앗수르와 니므롯을 치고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안식의 수요, 목자는 우리를 쉬게 인도하는 상징이니 침략과 같은 혼돈 앞에서 우리가 안식을 누리게 할 것이라는 뜻이고, 여덟은 안식 후 첫날 곧 성경에서는 늘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이므로 새로운 통치를 인하여 앗수르와 니므롯과 같은 신앙과 가치관에서 비롯된 혼돈과 다툼을 다스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과 연결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존재의 신이라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그것에 의지한다는 것은 존재의 신께 의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인간의 공적을 쌓아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겠다는 바벨탑이나, 사람의 정체성에 하나님의 의가 아닌 세상의 가치관과 간음하여 위대해지겠다는 것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입니다.


존재라는 것은 그 존재 자체로 온전하고, 존재가 가진 본성을 인하여 나타나는 행동과 표현은 그 어떤 것으로도 이길 수 없는 것임을 먼저 이야기했었습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정체성은 세상의 가치관과 섞지 않아도, 또 사람 그 자체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뭔가 자꾸 행위로 의로워지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임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이름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그 자체로 온전한 것임을 믿고 순종한다면 그것이 바로 평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것,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신 십자가에서 보이신 것은 발가벗겨진 사람의 정체성 그대로이고, 세상이 죄인 삼을 때에 이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모습을 보고서 그것이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 예수님께서 보이시고자 한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 거하게 되고 그것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생명이 되면 그 본성이 우리 육신의 삶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평강이시듯 우리의 삶을 평안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강이라는 것은 지극히 안정된 상태이고 안정된 상태라는 것은 그 존재가 목적대로, 의도대로 존재할 때에 가장 안정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평강인 것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의 의를 보이시는 것이 오신 목적이고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이기에 그것이 평강이고, 그것을 보고 그 모습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 역시 예수님과 같이 평강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강은 하나님이 주신 육신의 삶이 부족하기에 뭔가를 더하여 그 공로를 쌓아야 하나님 앞에 의로워진다는 가치관이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할 것처럼 독촉하는 것에서 우리를 이기게 하고, 사마리아와 같이 위대하고 높아져야 성공이고 안정이라 유혹하는 세상 가치관과 간음한 심령이 주는 채찍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평강이요 평안이요 안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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