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5:1-9)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9. 25. 10:06 Writer : 김홍덕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는 작은 것에서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베들레헴이 유다 고을 중에 작은 마을이라는 것을 언급합니다. 이는 흔히 예수님의 겸손함을 이야기하는 것에 사용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작은 마을에서 나신다고 하셨는데 지금의 사람들은 교회를 크고 화려하게 지어야 사람들이 교회에 올 것이라고, 또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순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마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크고 위대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크게 짓거나 가우디 성당과 같이 위대한 건축물을 지어야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의는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는 대명사이므로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니 그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의가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민주국가는 민주주<의>가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사람이요 하나님 의의 본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태초부터의 본성


이는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본체라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요한 사도가 예수님은 태초에 있었던 말씀이라고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한 사도가 말씀하시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로고서, 곧 계획이자 의를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가 선지자가 태어날 아이의 근본이 태초에 있다고 하는 것과 연결되고 하나인 것입니다.


이 아이가 태초의 근원이라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모든 인지와 가치는 바로 이 아이의 본성인 하나님의 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로 표현되고 그 표현된 하나님의 의는 세상의 모든 인식과 가치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창조가 <빛이 있으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인식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 인식은 당연히 하나님의 의에 대한 바른 인식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의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 의가 다스리는 사람, 그 의에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났으니 곧 베들레헴에 난 아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인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화려하고 크고 위대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고을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태초, 곧 하나님 의에 대하여 눈이 밝아지고 알게 되는 하나님 세계와 나라의 시작은 은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가 선지자는 이 아이가 나기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떼)를 바벨론 곧 세상에 두신다고 합니다. 이는 한 사람의 심령 안에 하나님의 의를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빛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 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의 본성이 생명으로 잉태되어 나면 그가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 육신의 삶이 속 심령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본성으로 하는 행동과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존재의 하나님의 능력


이는 여호와의 능력과 그 이름의 위엄에 의지하게 된다는 말씀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의지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정체성에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름은 곧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존재의 신이시므로 존재의 능력과 위엄에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존재의 능력에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의 본성을 표현하는 능력이 있는데 이것을 이기는 것은 없습니다. 바위를 뚫고 싹을 내는 식물의 본성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마지막으로 하시는 많은 질문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즉 본성에서 비롯되는 본성의 표현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데 이것이 바로 존재의 능력,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뭔가 안 될 때 하나님께 훈수 두듯 도와주시는 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그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시는 본성이 성령으로 인하여 속 심령 안에서 잉태되면 그 생명의 본성으로 살게 되는데 이것이 진정한 능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되면 그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 되어 그 삶으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막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가 위협이나 적신이나 칼이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한 것도 이것이고, 예수님께서 두려워말라고, 세상을 이겼다고 하심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 곧 존재의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너무 평안한 것입니다. 존재가 존재의 본성대로 행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고 안정적이며 안식이 되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칼도 용도대로 사용 목적대로 사용되고 있으면 주인도 칼도 안식이 됩니다. 그 보다 더한 안식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돌아온 백성, 곧 바벨론에 있었으나 자기 안에 베들레헴에서 난 아이와 같은 본성이 있는 사람의 안식이라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그리고 이것은 땅 끝까지 미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개인의 삶으로 볼 때 그 사람의 모든 삶에 미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땅은 흙이며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하셨기에 땅의 끝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의지하는 것이 땅 끝까지 이른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에서 비롯된 생명이 그 사람의 삶에 미친다는 것입니다. 즉 사나 죽으나 하나님을 위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땅 끝은 한 사람의 끝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도 미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그 사람의 심령 안에 베들레헴에서 난 그리스도의 본성이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능력과 의지와 안식이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당연히 그 사람은 생물학적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 곧 그리스도의 본성에 순종하고 그 본성이 자기 생명이 된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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