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6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은 멜기세댁의 반차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 그것이 약속인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멜기세댁의 반차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의 역사는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멜기세댁의 반차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시며 약속하신 것이다. 맹세하신다는 것은 그것은 불변하는 영원한 약속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의 근간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 창세기는 하나님은 사람의 창조주로,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지자, 곧 우리에 대하여 먼저 아시고 알려 주시는 분으로, 역사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통치자 되심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출애굽기와 복음서와 같은 성경을 통해서는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말씀하신다. 그런 관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그것을 히브리서는 “약속”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다. 그리고 그 창조의 목적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존재와 성품을 표현할 형식으로서 사람을 지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목적을 사람에게 강제하시지 않고 사람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다. 강제된 것은 영광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믿고 그 의를 스스로 순종하는 사람의 모습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순종이고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을 때 가지신 뜻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순종하기 전까지의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보실 때 자리를 벗어난 존재다. 즉 죄인이다. 그리고 사람의 입장에서 그 상태는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어두운 상태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상태가 그렇다. 육신으로는 살았지만 삶의 목적은 알지 못하는 존재 정체성에 관해서는 죽은 인생들을 살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 그것은 사람(the Man)이라는 존재에게 있어 유일한 존재의 의미다. 그것은 창조주의 계획이니 피조물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것이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에게 정한 유일한 계획이고 목적이기에 그것은 사람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하고 계획하신 것은 사실 그것 밖에 없다. 원래 존재하지도 않던 사람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담을 그릇으로, 거하시는 성전으로, 그것 대로 살아가는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있다면 더 이상의 영광이 없는 귀한 것이고, 존재로써 사람의 관점에서 봐도 존재가 존재 목적대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 이상 온전한 것은 없다. 하나님의 약속과 복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을 묵상해 보면, 사람에게 있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가지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약속이고, 그것에 대하여 맹세하심은 그것이 인생에게 유일하고 가장 온전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약속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나타난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말씀 곧 하나님의 계획과 의가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약속의 본질이다. 히브리서가 말씀하시는 약속이 바로 예수님이고, 예수님으로 표현되고 전해지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래 하나님의 본체이고 하나님 품속에 있던 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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