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육신이 섭취하는 것으로 공기와 물과 음식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의 유지와 직결된 요소들이다. 이것은 또한 이 모든 것은 영적으로도 각각 다 대응되는 것이 있다. 성경은 이것에 대하여 육신의 것을 그림자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먹어야 사는 것은 영적인 양식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물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사람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갈증이 있는데 이것은 마치 육신의 갈증을 해갈하기 위하여 물을 마시듯이 어떤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궁창 위의 물을 말한다. 궁창 아래의 물은 세상의 학문과 사람들이 <"사람은 이래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이다.


천지창조의 과정에서 물에 관한 것이 구분되고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면 그 다음은 먹는 것에 관한 것이다. (호흡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나온다.) 그래서 천지창조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은 어떤 물은 마셔도 되고 어떤 물은 마시면 되지 않듯이 먹는 것 또한 그렇다.





물이 자아 정체성에 대한 해갈이라면, 먹는 것은 자아 정체성의 실현과 그 실현을 위한 에너지의 섭취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은 먹을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에 대하여 셋째 날과 여섯째 날에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먼저 셋째 날에 궁창 아래의 모든 물이 모인 바다에서 드러난 땅에게 하나님께서는 <풀과 씨 있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식물로 주신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사람의 먹거리라는 것이다. 즉, 이것이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식물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땅이다. 그 땅이라는 곳은 궁창 아래의 모든 물이 모인 바다에서 드러난 땅이다. 이 땅은 세례를 설명하는 것으로 사람이 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으로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해갈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먹는 모든 식물은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식물 곧 사람이 먹는 것은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구분하고 세상의 가치관 안에서 살 수 없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을 식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먹거리고, 그것을 먹는 이가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인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