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 법이 바뀌어야 만족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질그릇의 선택 Date : 2020. 9. 13. 04:00 Writer : 김홍덕

그렇다면 자리를 떠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가장 명확한 답은 선악과에서 찾을 수 있다. 선악과 사건 속 아담은 선악과를 먹기 전과 후의 모습이 다르다. 이것은 죄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선악과를 먹기 전 아담은 죄가 없는 사람이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죄인이다. 자리를 떠난 모습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은 상태가 사람의 자리가 아니다. 선악과를 먹기전 아담의 모습이 사람의 자리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은 모든 사람의 상태이고 모습이다.


오늘 나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내가 연약한 인생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면 아직 선악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만족의 동산에 있지 않으니 선악과를 먹고 쫓겨난 아담과 같은 자리다. 이것을 부인하면 양심에 화인 맞은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자신의 상태를 부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감추고 부인하려 해도 모든 사람은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삶은 만족스러울 수 없고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라는 생각은 고착화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도 믿지 않았고, 지금도 누군가가 자신을 죄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왜 그렇게 말하는지 듣기도 전에 부인한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죄가 없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인 자신이 죄 없다고 말하지 못하니 자신과 동일한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면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부인한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그래서 노력하고, 그 노력에 지쳐 인생은 힘들다 말하고 있다면 구원이 없는 삶


특히 문제가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다. 물론 하나님에 대하여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지만 기독 교인은 자신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따져 보면 둘 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것이지만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죄 없다고는 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은 착각에 빠져 있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한 번도 하나님에 대하여 또 자기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 없이 그저 세상 가치만 좇아가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착각하고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적어도 하나 님을 믿으려고는 한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자리로 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을 한 번 내려놓은 경험이 있다는 의미다. 모든 것은 한 번이 어렵지 다음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가능성은더 크다.


사람들이 죄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행위가 의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자신의 행위를 계속 정죄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간과한다. 우리는 예수님과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고, 또 다르기에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자세라는 그럴듯한 말로 덮어두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고 심각하며 근원적인 문제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죄 없다 말하지 못하는 것은 영혼이 걸린 문제


죄가 있는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말 자체도 안 되지만, 말이 안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영혼이 걸린 문제다. 구원을 받았 으면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솔직하게 죄가 있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 마음에 죄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있지만 교회에 다니고 있고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것을 믿고 있으니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심을 상기해야 한다. 믿는 것인지, 아니면 믿고 싶은 것인지 정도는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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