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 - 육신의 희생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질그릇의 선택 Date : 2020. 9. 1. 04:00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 육신을 부끄러워하는 아담을 위해 가죽옷을 입히 셨다. 어떤 동물의 가죽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 죽음은 사람을 대신하는 제사의 원조로 볼 수 있고, 제사의 궁극은 예수님 이시며,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표현하므로 일반적으로 양이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아담이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감추기 위하여 다른 것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육신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어떤 육신이 소비(희 생)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에는 육신이 소비된다는 것을알 수 있다. 이것을 희생이라고도 한다. 제사가 희생인 이유다. 무엇보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이 그렇다. 그러니까 구속에는 육신이 소비되는 희생이 절대적이다. 이것은 육신의 존재 목적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낮아지고 희생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 하는데 육신은 절대적으로 온전하며, 그 온전함으로 인하여 하나 님께서 육신 가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겠다는 뜻을 정하신 것이다.


사람을 육신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육신의 소비가 있어야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 희생하는 육신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면 사람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 께서 인생을 조성하신 목적을 알게 된다.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들 임이 드러난다는 것이 바로 이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인생이 소비되고 희생될 때 하나님이 나타나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영광이란 나타나는 것이다. 인생은 단 한 번이고 사는 동안 소비되듯 연약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속이 있다는 것은 대속물의 육신이 소비되었다는 것


예수님의 구속도 이것이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법도 이것이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도 이것이다. 예수님은 이법대로 오시고 희생의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이 법은 모든 인생의 존재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주신 뜻대로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에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육신을 주신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보는 관점이다. 하나님께서 육신 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보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는 것은 그 목적에 너무 적합하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는 육신을 다르게 보게 한다. 세월과 함께 소비 되는 연약한 육신은 하나님께 부정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부끄럽게 여긴다. 사람 안에 욕심이나, 정욕이 가득함이 하나님 앞에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육신 가진 인생을 창조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 육신을 부정하게 여기는 것은 만드신 이를 비난하는 것이다. 피조물인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다.


그렇게 벗어난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과 다르게 보던 우리가 육신에 대하여 가지는 관점을 회복하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 가가 밖에 없다. 구원을 얻게 할 이름(정체성)으로 예수 외에 주신 적이 없다고 하신 것이 이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것은 오직 육신의 정체성이다.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들에게 온전한 육신의 정체성을 보이신 것이다. 그래서 육신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예수님의 육신이 옥합과 같이 깨어지니 옥합에서 향기가 나듯 물과 피가 나왔다. 육신이 희생되고 소비되니 물과 피, 즉 하나 님의 말씀과 생명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본 사람들도 자신이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보여 주신 대로 자신에게 주신 육신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존재임을 깨닫고 예수님과 같이 다시 육신으로 종과 같이 섬겨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일에 순종했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형벌을 대신 받은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육신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보이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육신의 희생을 드리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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