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신앙 안에서 이것은 무정의 용어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만약 교인들을 모아 놓고서 예수님이 왜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이야기 해 보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 있게 이야기 하며, 또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과연 일치할지 그것은 잘 모르는 일이 아닐까 의혹을 재기해 보고 싶다.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육신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개념을 확고한 기반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영이신 하나님과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라는 그 관계와, 또한 삼위일체라는 개념으로 들어갔을 때 육신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개념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부자관계(?)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는 머리로나 지식적으로 특히나 신학적인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알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같이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예수님이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지는 곧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표준이기 때문이다. 즉 영이신 하나님과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이 이해가 된다는 것은 육신을 가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을 알았다는 것이 된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이 아버지와 아들임을 이해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라는 것이다.


이 블로그에서 수 없이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 아들은 아버지가 가진 의와 본성이 보이는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이다. 그러니까 아버지 안에 있는 본성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아버지의 의는 보이지 않는데, 그것이 아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라는 개념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데, 아들이 태어남으로 한 남자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의와 계획을 뜻하는 로고스이다. 즉 하나님의 의와 계획이 육신으로 표현된 존재가 예수님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아들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이다. 하나님의 뜻과 육신으로 나타나신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보고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성령은 모두 하나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로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 내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들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과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언뜻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바타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말씀이 아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행동이나 일을 따라 하신다는 것을 표현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하시는 말씀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보지 않고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버지의 일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아들은 그 아버지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보았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고, 그 보는 것이 자신의 일과 의미가 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 ‘제이크 셀리’는 나바족의 여전사 ‘네이티리’와의 갈등 이후에 이런 말을 서로 주고받는다. “I see you.” ‘네가 보인다.’라는 말이다. 바로 여기서 말하는 것과 같은 보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보는 것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즉 너의 속마음, 너의 종심, 너의 의도, 너의 본질이 보인다는 의미의 “본다”라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아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가지신 의를 볼 수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어야 아들로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아버지의 의가 자기 안에서 의미가 있을 때 비로소 아들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이라는 것은 죽어도 그 아버지와의 관계를 델 수 없고, 그 아버지의 본성이 자기 삶의 자국마다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일을 보아야 아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버지의 본성, 아버지가 아들로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가 자기 안에 있고, 그것이 보일 때 비로소 아들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들은 그 존재 자체가 아버지가 나타내고자 한 의의 본질이기에 그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일, 곧 아버지를 나타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들이 태어나기만 해도 그 아들로 인하여 누구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아들이 살아가는 모습만 봐도 아버지가 어떤 혈통이고, 어떤 성품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의가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 육신의 혈통의 근원인 것과 같이 자기 존재의 근원이자 본질이라는 것을 아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모든 삶은 다 아버지의 일, 곧 아버지를 나타내는 것이 되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도 그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육신을 가진 이 인생의 의미와 삶의 본질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순종으로 받아들임)을 가진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유가 우리와 상관이 있는 유일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사람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존재의 목적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 곧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나의 육신을 가진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독생자이신 것은 바로 이 유일한 법으로 오신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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