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허물 곧 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탈취하면서부터 시작된 모든 삶이라고 앞선 글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것이지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머리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머리로 이해되는 것에서 시작하겠지만,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를 알고 자신이 그 죄 가운데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이때까지 삶의 부인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것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인생을 우리의 의지대로 시작하지 않았기에 우리 스스로 존재하게 된 목적을 또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떤 여자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었기에 아들이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의가 육신을 가진 존재로 표현되면 그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우리의 존재 이유를 보이시려고 오신 분이시고, 그 자체가 우리 존재의 목적이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보면서 밥 달라, 돈 달라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 보이신 모습이 바로 우리의 존재 정체성이요 우리의 존재 목적이라는 것을 발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그것이고, 그 보이시려는 대상인 사람들이 바로 그 목적대로 지음 받았기에 완전히 짝이 맞는 온전한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의 모습으로 받지 않기 때문에 어려워진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보고서, “저런 몰골과 행실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냐?”라고 비난하고, 어떤 이는 예수님께서 보이신 기적을 보면서 자신도 그 기적을 힘입어서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을 자기 신앙이라고 여기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성경을 육신으로 지켜내는 것을 pay로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과 전혀 무관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대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살리셨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지목한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지목이 개개인이 아니라 어떤 사람 예를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것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보실 때 온전하고 생명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살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도 바로 이것인데,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실존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이 <사실>임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것인지 인생의 생각으로 온전하게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의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존하셨다는 사실임을 믿는 것이나, 예수님의 기적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믿는 것은 명백히, 아주 명백히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어떤 사실이나 결과를 믿는 것이지 예수님 그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신앙하는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믿습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이 그 믿음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구분 못하면 평생 헛짓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면 예수님의 모든 것을 믿게 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이 내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었다고 한 들 자신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믿지 않는데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아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라는 것은 순종하고 수용하는 것이기에,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같은 육신을 가진 우리도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종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고, 나도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은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또한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보이신 예수님을 보고서 믿는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안에 받아들인 즉 순종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자신의 존재 정체성이요 삶의 목적이요 의미라는 것을 순종하는 이들의 심령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하심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본성이 되어 자신이 그렇게 살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나면 그 생명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이.


그것이 생명이고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유일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유일하시고, 우리가 구원 받을 이름(정체성)이 예수 외에는 없다고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즉 그리스도(a christ)가 된 이들은 생명이 있는 유일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 안에 있는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으로 살아 있어도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인하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면 죽은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유일하게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시고 영원하시니 그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은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에 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죽음 가운데 있을 수 없다는 법으로 인하여 부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 존재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는 법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이나 조건을 특정하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그 자체,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신의 존재 정체성이요 삶의 목적이자 의미라는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 되는 것이기에 사망에서 생명 있는 존재가 되는 법을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는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