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vs. 십자가

Category : 김집사의 뜰/십자가의 삶 Date : 2024. 4. 2. 05:55 Writer : 김홍덕

사람은 자기 일상이 늘 상식적이길 원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의 상식이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누구나 상식을 추구하는 건 그 경계선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핵심적인 본질은 대부분 공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먼저 온 사람이 먼저 행정 서비스를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상식에 관한 사람의 기대가 기술을 적용해서 '번호표'를 발행하는 기계를 만들었고, 그 작은 종이 하나가 사람의 이기심을 잠재운다. 모두가 동의하는 상식의 힘이다.

 

하지만 반대로 상식은 사람 사이에 갈등을 일으킨다. 한 사람의 행동이 비상식적일 때, 그로 인해 불쾌하거나 나의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생각할 때 항의가 발생하고, 항의에 불복하는 사람과 다툼이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도로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다. 도로에서는 도로교통법을 잘 준수하고 가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운전자로 인해 불쾌하고 심지어 위험한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기적인 사람이 자기 이익을 위한 난폭운전 시도가 도로 상황이나 미숙한 운전자 혹은 잠깐의 실수 등에 의해 저지당할 때 적반하장으로 이기적인 사람의 도발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같은 상식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때론 서로의 삶의 영역에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친밀한 관계에서도 상식은 관계 유지의 기준이 된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 약속에 늦은 상태에서 서둘러 준비하는 것과 같은 일들은 아주 친밀한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지켜지지 않으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때로는 서로 생각하는 상식이 달라서 갈등이 되기도 한다. 이런 갈등은 가족과 같이 삶을 공유하는 관계에서 때로 심각한 갈등이 되기도 한다. 설탕과 소금 중 무엇에 삶은 감자를 찍어 먹는 게 상식이냐를 두고 부부가 다투다 이혼했다는 이야기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건 상식적일까? 그렇지 않다. 십자가를 진다는 건 사람이 일반으로 생각하는 상식에 반한다.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수고에 관해서는 공정한 분배, 등가 교환이 상식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도 같은 결이다. 두 사람 사이에 수고해야할 노동이나 일이 생긴다면 공동으로 부담하고,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이라면 힘센 사람이 더 부담하는 게 상식이고 공정이다. 하지만 십자가는 공정하게 일을 나누는 게 아니다. <본능>적으로 내가 더 수고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보통 무게의 장바구니라면 집에 도착해서 남편이 차를 지하에 주차하러 가고 아내가 먼저 내려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게 상식적이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에게 그냥 가라고 하고 멀리 주차한 다음에 장바구니를 다시 들고 가려 한다면, 또는 굳이 지하 주차장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아내가 같이 내려가서 괜히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감당하면서까지 혼자서도 들 수 있는 장바구니를 같이 든다면 이건 공정한 상식은 아니다. 그러나 이게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진다는 건 공정과 상식 앞에서 이타적인 본능을 보이는 삶의 태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십자가는 노력의 범주가 아니다. 그와 같은 행동이 본능에서 비롯되는 걸 말한다.

 

이런 작은 사례에서도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장바구니를 그것도 도착해서 주차장에서 집까지 들고 가는 작은 일에도 십자가를 지는 삶은 공정하고 상식적이지 않지만 오히려 삶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한다. 사람의 관계에서 한 사람이 더 많은 수고를 감당하는 불공정이 평안과 기쁨 그리고 감동을 준다. 이게 십자가의 삶이다. 그리고 또 언급하지만, 이 같은 삶의 모습은 좋은 관계를 위한 수단일 때는 십자가를 진다고 하지 않는다. 그건 선행(선한 행동)이다. 하나님 앞에 행함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말할 때 그 행동의 범주에 속한다. 십자가를 지는 건 그런 행위가 아니라 본능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굳이 공정이나 상식이 필요하지 않다. 공정과 상식은 이기적인 사람 마음에 질서를 부여하지만, 내가 상대의 이기적인 욕구를 그대로 수용하여 더 수고하는데 굳이 질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로 이미 서로가 행복하고, 평화로우며,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신다고 하신 세상에 없는 평안이 바로 이런 것이고, 세상에 없는 기쁨이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건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만이 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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