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러 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잡수셨다. 그것을 지금도 기념하기 위하여 개신교에서는 성찬식을 천주교에서는 미사 때 마다 기념하는 순서가 있다. 이 자리에서 떡을 떼시며 떡은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시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한 때 기독교인들은 피를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오해도 있었다고 하는데, 웃픈 일이지만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대로, 형식만 보는 관점은 아직도 여전하고, 사람이 살 동안 있을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포도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한다면, 생물 혹은 식물학자는 고사하고 농부도 아닌 입장에서 포도의 특징을 비교하긴 좀 그렇다. 다만 몇 가지 좀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술을 만드는 과일이고, 또 술이 되었을 때 포도 자체보다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명제가 아닌가 싶다. 그것은 상할수록 가치가 올라간다는 의미로 본다면 예수님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 좋은 특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경에서는 <피는 생명>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피를 마시지 말라고 하셨는데, 물론 피 자체는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내 피를 마시라.’라고 하신 것은 율법을 어기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이 너의 것이 되게 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율법의 목적이 예수님이고, 먹는다는 것은 몸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논리로 따져도 그렇다.


떡은 또한 몸이라고 하시면서 먹으라고 하셨다. 피가 생명이라면 몸은 형식이다. 생명이 가진 본성이 형상화되고 그 생명의 본성과 특징과 행동을 표현하는 도구와 같은 존재가 바로 몸이다. 그런 것을 이어서 생각해보면 피와 살을 마시라고 하신 것은 생명과 그 생명의 본성이 너희의 것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내용과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이 특을 벗어난 것은 절대로 없다. 그것은 이 세상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존재를 표현하시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세상으로 나타내셨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이 표현된 형식이라는 이 법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이 만들면 누가 봐도 애플 제품으로 느끼듯, 하나님께서 의를 표현하기 위하여 만든 세상이라는 이 법의 예외가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용과 형식>이라는 것은 다소 건조한 표현일 수 있다. 성경에서 이러한 것을 정말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의 예를 들어보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LOGOS)이 예수님이라는 육신이 되었다는 것인데, LOGOS가 ‘계획’, ‘계산’, ‘의도’라는 뜻을 가진 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하나님의 의와 계획이 육신이 되었다는 표현이고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셨을 때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든다고 하셨는데 이때 하나님의 형상은 image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만들자고 하신 것이다. 즉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자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 형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자체로는 그 존재를 볼 수 없으니 사람이라는 형식이 있는 존재를 만들어서 그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이미지를 알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람의 존재 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에게 구원자이신 메시아가 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게 하실 의를 가지고 만드셨는데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타락하므로 하나님께서 원래 사람을 만드신 그 사람의 본질과 목적의 자리를 떠나 죄에 빠졌는데, 사람의 모습을 회복시키시고자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라고 하신 것 역시 같은 것이다. 구약시대의 성전의 식양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다른 신들의 신전에서 가증 중요한 것인 하나님의 형상이나 조각상은 없다. 왜냐하면 성전의 모든 것, 작은 그릇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성품을,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성전을, 또한 성전을 구성하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육신과 또한 육신을 가진 이 삶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표현 양식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성찬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것은 결국은 예수님의 생명과 그 생명으로 인한 삶이 너희의 것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예수님의 피와 살, 곧 생명과 삶이 너희의 것이 되는 방법은 먹는 것이라는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그 먹은 것이 몸 안에서 몸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고, 몸 안에서 하나가 되어 몸으로 표현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먹은 것이 몸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명의 본성이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염려하므로 키를 자라게 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의지나 노력으로 몸의 일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나의 생명이 되는 것은 노력이나 염려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먹은 것이 생명의 법에 따르는 몸의 법에 따라 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그것이 바로 먹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성찬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소셔 보이신 모든 것에 대한 최종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제자들에게 그간 하신 말씀, 그간 사람들 앞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 그 모든 것을 행하셨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너희가 먹는 것, 곧 이때가지 본 예수님의 모든 모습이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 내가 먹었을 때 나와 맞는 음식을 먹음과 같이 너의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바로 이 유월절 마지막 성찬의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실존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나, 과학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을 일으킬 능력이 있으신 분이고, 신이라는 것과 같은 객관적인 사실, 혹은 객관적으로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것을 다른 사람과는 달리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모습과 그 말씀과 삶이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고, 내가 먹어야 할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실존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람 변하는 기적을 맛본 사람이 그깟 바다가 갈라지는 것이 뭐가 대단한 일이겠는가? 갈라진 바다도 원래로 돌아가고 그 위를 걸은 물도 여상하지만 생명이 바뀐 사람은 그 새 생명이 영원한데 그런 기적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또한 처음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렇게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였다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이 자기 삶의 목적이 되면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작은 그리스도(christian=a christ)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다.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성찬도 포도주도 피도 살도 떡도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육신을 가진 형식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인 떡과 생명이요 피인 포도주를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듯이 너희도 그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영인 내용을 표현하는 몸 가진 형식이 되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성전과 같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삶이 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것이 떡과 포도주를 주신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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