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말세와 관련된 비유와 말씀을 마치시고 베다니에 있는 문둥이 시몬의 집에 유하시게 되었다. 그때 이미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예수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깨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런데 그것을 본 사람들 중에 다른 사람도 아닌 제자들이 그것을 분히 여겼다. 왜냐하면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더 좋은데 왜 예수님께서 붓는 것으로 다 소비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좀 특이하게 요한복음에도 기록되었는데 다른 복음서 보다 더 상세히 기록되었다. 보통 공관복음이라고 하면 4복음서 중에 요한복음을 제외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말한다. 이 세 복음서는 서로 연관된 내용이 중복되어 있지만 요한복음은 사실 좀 다른 관점의 성경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관점에서 기록한 요한 사도가 볼 때 이 사건은 의미가 컸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은 단순히 제자들의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것을 본 가룟 유다는 이 일과 이 일을 대하는 예수님을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팔아 버리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는 사건이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향유를 예수님께 붓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냐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향유의 양이 한 나드이고 그 가치는 삼백 데나리온이라고 했다. 그것은 300일의 품삯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매번 먹을 것이나 구하러 다니던 제자들 입장에서 볼 때 눈에 펼쳐진 광경은 쉽게 용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제자들의 관점은 그 향유가 세상적인 가치 기준에서 판단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때까지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또한 백성들을 가난과 병에서 구원할 메시아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의 왕이 되실 줄로 믿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아직 모든 것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것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점으로 열 받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 일이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것이고 또한 이 일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면 어디라도 전해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이 여자가 내게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 26:12-13)


기름을 붓는 다는 것은 기름 부음을 받는 사람에게 어떤 신분을 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로 보면 기름 부음을 받는 신분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가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이 여인에는 예수님이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며 메시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장사를 위하여 향유를 부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는 것은 기름을 붓는 것과 예수님의 죽으심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정치적인 나라의 왕이 되거나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왕이 되려면 죽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살아야 한다. 제자들의 관점으로는 예수님이 살아서 메시아가 되어야 하지만 예수님은 장사지내시게 됨으로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이 여인이 보여주고 있다고 하시는 것이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그리스도 곧 메시아에 대한 환상은 같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영웅이고 메시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메시아요 그리스도가 자신이, 사람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같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고, 지금도 많은 신앙인들이 자기가 살아가는 형편과 모양에 대하여 신앙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 그렇다. 예수 믿어 복 받는다는 그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대변한다. 복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는 것에서.


제자들의 관점이 그랬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당시 타락한 모든 것을 바로잡고, 또한 로마의 속국인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까지 속에 칼을 품고 있었고,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은 예수님이 왕이 되면 높은 자리를 하나씩 달라고 하고 제자들은 그 소리에 열 받고 한 것이 다 그런 기대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기대에 가장 계산적이었던 제자가 바로 가룟 유다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으러 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어야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된다면서 예수님이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는 일이 온 세상에 전해질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가룟 유다는 정말로 돌아버릴 것 같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결국 예수님이 이때까지 보여준 모든 것이 자기와 생각하던 것과 다르다고 결심하고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팔아버리는 것이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 했듯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너무 많다.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나 이유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 자신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며 협박하는 것 그것뿐인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는데, 그 세상 속에 한 사람이 이 세상의 물건과 재화와 세상의 것으로 성공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자동차가 주인을 목적지에 데려다 주지는 않고, 자동차에 금칠을 해주면 주인이 영광스러워질 것이라며 떼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로 그런 관점으로 보면 이 여인의 처사는 기가 차는 것이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예수님은 죽으면 안 되시는 분인데 장사를 위하여 무엇을 한다는 것도 가당치 않은 것이고, 더욱이 그것을 위하여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큰 재물을 그렇게 허무하게 소비한다는 것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리스도, 메시아는 제자들의 그런 관점이나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며 교회에 다니는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고 기름 부음을 받으시는 것은 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죽임을 당할 때 메시아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이 되시는 것을 위한 이 여인의 행동은 복음과 늘 함께 전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은 복음이다. 그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것에 대하여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시는 그것이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죽으심이 복음이 되고, 죽으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시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신 의와 뜻과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하여 표현되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이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모든 것을 보이신 자리가 바로 십자가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이미지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대로 사람이 살면 그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의 역할이 순종하는 수동에서 증동적인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원래 태초에 사람을 만드실 그 때에 사람의 모습 그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능동적으로 할 수 없는 십자가에 달려 있는 그 모습이 바로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백부장의 고백이 그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은 이 땅의 왕이 되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이 가진 죄와 어두움인 ‘왜 사는지?’ 모르는 것, ‘왜 존재하는지 모르는 것’을 알려 주셨기에 구원자이신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왜 사는지 모르므로 어두움에 있어 맹인과 같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문둥병자와 같은 모든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이유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의 십자라고 인하여 깨닫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의 구원자요 그리스도요 메시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시므로 이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 부은 것이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것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복음의 주체이시기에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확증하는 기름 부음의 사건의 주인공인 여인의 일이 복음과 함께 전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떼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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