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20-36) 하나님의 영광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복음 Date : 2016. 4. 6. 10:51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에 들어 가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길은 알지 못하면서 ‘호산나’ 외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다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왕이라 부르며 섬기려 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섬기는 자는 예수님의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밀알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의 한 알의 밀알로 죽으신 그 자리(운명과 정체성)에 함께 있는 자가 예수님을 섬기는 자라는 것이다. 밀이 죽어 밀이 나듯,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면 예수님과 동일한 생명을 가진 이가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이어서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를 귀히 여기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셨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데(요 12:27,28)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육신을 가지셨기에 이제 닥친 십자가의 길을 면키 원하시는 기도를 하시기도 했지만 예수님 기도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곧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을 얻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다면 우리가 또한 십자가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다시 십자가의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은 많은 열매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어떤 것일까? 아마 대표적인 것이 수상소감과 같은 것일 것이다. 어떤 경쟁에서 이겨서 Winner가 되었을 때, 자신의 이김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라고 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수상자 외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은 그렇게 공로와 성과를 기준으로 사람을 보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상의 법칙, 곧 육신의 능력을 겨루어 이겨서 승자가 되는 그 법을 기반으로 한 승리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여긴다. 그것은 하나님을 소유와 공로의 세계에서의 승자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전락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스스로 있는 자” 곧 존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 된다. 아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말씀하시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라는 세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견해는 기독교 신앙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세상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한 기도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육신이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신분)를 하나님께 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셨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또 이제 십자가로 인하여 다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에서 난 이 소리를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예수님 삶의 어떤 것이 영광인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십자가가 영광이라는 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 그 때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것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사도도 몰랐다는 것이다. 요한 사도도 그 하늘의 소리가 무엇인지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이신 것이 육신을 가진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나서야 그 소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영광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어떤 것이 어떤 의미의 영광을 얻으려 해도 일단 그것이 나타나야 영광이 되든지 저주가 되든지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려면 일단 하나님이 표현되고 나타나셔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름은 바로 그 존재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그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로고스 – 계획, 뜻)이 육신이 되신, 그러니까 육신으로 표현된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존재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그 육신 가진 삶으로 표현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곧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을 위하여 창조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삶으로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육신으로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냐 하면,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하심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사는 것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그것의 실체는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를 지실 텐데 그것이 하나님을 또 영광스럽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광, 세상의 법으로 세상에서 경쟁해서 이기는 이김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은 스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만, 세상의 법으로 패한 이들에게는 그것이 바로 저주요 심판이기 때문에 영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회에 다니는 사람만 사법고시에 붙는다면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영광일지 모르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원망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또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십자가의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세상의 경쟁에서 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가치관으로 죄인이 되셔서 사형 당하신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로에서 운전할 때, 자기가 빨리 가고 자신의 운전 습관이 가장 옳다고 생각해서 이리저리 뽐내듯 다시는 사람으로 인한 불편을 감수하며 법규를 지키며 가는 것, 내가 피곤하니 설거지를 좀 하라는 아내의 기준에 맞추어 설거지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이익을 구하고,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것에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마음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귀찮고 분하지만 그렇게 해야 천국에 간다니까, 아니면 그래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험한 일 당하지 않게 하신다니까 하는 것은 다 거짓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 없이 몸을 불사르는 것이다. 남이 자기의 의와 이익을 주장하는 것 앞에 죄인이 되어 그것을 순종하는 삶이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기 안에 있어서 그 이유, 즉 생명의 본성 때문에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이 진정한 십자가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생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심을 보고 육신을 가진 자신의 삶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의 의와 인생에 대한 목적임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삶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심과 같이 십자가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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