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뭐고, 악은 뭔가?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6. 1. 10. 21:55 Writer : 김홍덕

죄는 누구나 이해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생각하는 죄와 사람이 생각하는 죄의 개념이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예수님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죄는 달랐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창녀와 세리가 죄인이라 여겼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보고 악한 세대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행위를 기준으로 죄를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생각하는 죄는 행동의 결과나 모양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 곧 정체성이다. 생명의 유전자가 생명의 모든 행동과 생김새를 결정하듯, 사람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지가 그 사람의 모든 행실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쓴 글에서 하나님께서 죄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그 의를 나타내려 하시려고 사람을 지으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들어가면 사람의 정체성이 회복되어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죄란, 그렇게 되지 않은 상태에 사는 인생의 상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하시는 것이다.


주기도문에서 죄는 빚(debt)을 말한다. 즉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빚진 자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께 돈을 빌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이 전구를 사거나 만든다는 것은 빛을 밝혀 주기를 바라는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전구의 위치에서 보면 자신을 만들거나 구매한 사람의 목적을 빚진 것이듯,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는 목적, 그것이 바로 빚이다. 그것이 죄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법으로 또 도덕적으로나 사회 문화적으로 죄나 몹쓸 짓으로 여기는 모든 것들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행동에 대한 것들이다. 그래서 신앙 안에서도 그런 것을 죄로 여긴다. 그것은 나쁘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죄의 본질이라 여기는 것은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해결하는 것을 신앙의 방향과 가치관으로 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그런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는 그것이 본질이 아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죄,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행동으로 지은 죄는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 하나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양과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은 바로 선악과를 먹은 마음인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일과 상황에 대하여 자기가 가진 의를 다른 사람에게, 또 사회와 상황에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다투다가 상대를 때린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자신이 가진 무력으로 관철시키려 한 것이다. 즉 그 상황을 관장하는 하나님이 되려 한 것이다. 자기 생각이 옳고,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했기에 남에게 그런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인식하는 모든 죄는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그 목적대로 사람이 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육신의 삶을 본질로 오판하고서 그 눈에 보이는 것 안에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주장하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스스로 연약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려 하시는데, 사람들은 육신의 능력을 강하게 하여 이기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죄, 곧 자기의 존재 정체성의 목적을 떠난 자리에서 살다보니 그 삶에서 비롯되는 것, 그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표현되는 모든 것이 사회적으로 또 서로에게 상처와 갈등을 주는 죄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죄에서 구하시려 한다는 것은 그런 다툼에서 구하신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구하려면 근본 원인, 죄의 뿌리를 뽑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목적 안으로 회복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이고 회복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도덕선생으로, 죄를 짓지 않게 계도하는 선도로서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그 뜻이 무엇인지를 보이시러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말씀(하나님의 뜻)이 육신이 되셨다고 하는 것이다.


그 뜻은 사람이 아담이 먹은 선악의 기준으로 볼 때 한없이 부끄럽고,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을 것 같은 이 연약한 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이 육신을 가진 인생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예비 된 존재라는 것, 이 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사람이 자기 운명으로, 삶의 목적과 의미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 그것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사람들이 세상의 안목으로 자신을 볼 때 연약해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할 것 같고, 또 자기 안에서 나오는 인간의 본성을 세상의 도덕적인 기준으로 볼 때 너무 탐욕스럽고 추해서 그것들을 이겨내야 할 것 같은 육신을 가진 모습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는 것, 그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가 되는 것과 같아지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의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이라는 것이나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니,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악한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악은 그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에 반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지 못한 상태라면, 악은 하나님의 창조목적,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사람이 가진 가치관으로 죄로 여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를 사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죽어야할 죄라고 하는 것이 악한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성인으로 오시지 않았다. 육신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로 오셨다. 이것은 인생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가능성의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죄라는 것은 사람이 인정하면 구원이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 그것은 당연히 ‘이제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육신을 가진 삶’을 살겠다는 인식이 있어야 가능한 고백인 것이다. 그 고백의 기조가 바로 ‘천지창조’고 ‘성령으로 잉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라는 명제의 정체성은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면 구원이고, 그렇지 않고 끝내 눈에 보이는 육신의 삶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자기 삶의 본질로 여기면서 살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믿는 이름으로 또 다른 의를 세상에 주장하면서 남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불편하게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산다는 것은 결국 육신을 가진 인생이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나타내기 위하여 만드신 온전한 존재이며, 이 육신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으며, 그런 아들이 된 인생은 또한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보이기에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부인하고, 그런 생각과 말과 삶을 부정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 그것이 악한 것이다. 그 악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 안에 속한 삶을 살지 않고 있는 상태라면, 악함은 그 상태가 선한 것이고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악함인 것이다. 죄는 사람이 스스로가 (아직)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지 못했음을 인정하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나,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 아담이 부끄럽게 여긴 이 육신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나타낼 바로 그 존재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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