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15-28 세상의 멸망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8. 11. 11:10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남자와 여자는 같이 살고 있어도 다른 세상을 산다.”와 같은 말, 또 때로는 “연예인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이 있다.”와 같은 표현에서 세상이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삼라만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가치 기준에 의하여 자기가 세운 세상이 다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세상도 그것이다.


천지창조 역시 같은 이치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이 신앙의 기초이고 근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에 관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만드셨는지, 그 목적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세계를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창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의와 세상을 만드신 목적을 알고서 살아가는 안목이 새롭게 열리는 그것이 바로 천지창조인 것이다. 


그때는 남자와 여자가 세상을 보는 것이 다르듯이 같은 세상을 살아도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전에 알지 못하던 세상을 알고서 살아가면서 세상이 자기에게 투영되고, 또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전에 없던 가치관으로 인하여 새롭게 생성된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이고, 천국이며, 그런 세계가 열리는 것이 바로 천지창조인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세계가 그렇듯 반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자기만의 세상이 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남자와 여자가 같은 공간과 시대를 살아도 다른 세상을 산다고 하는 것과 같이 다들 자기만의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모든 것이 돈이라는 가치관으로 비쳐지고, 어떤 이들은 명예, 또 어떤 이는 권력과 같은 것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 창조된 자기만의 세계와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세상이 망하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날 것이라고 하시는 것은 물리적인 이 우주 공간 속의 지구가 망하는 것을 예언하시는 목적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만의 세상이 망하고 나면 그때 그 사람에게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주 주관적인 사건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바라시는 의와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 이 글에서 마태복음에서 또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세상의 종말이라는 것이 이 지구가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든 세상이 망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분명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망하는 세상이 이 삼라만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세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망한다고 할 때 망하고 없어지고 황폐케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세상의 본질을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성경에서 세상이 망한다고 하니, 이 지구가 멸망하고 하늘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지구가 세상의 본질인 사람이다. 그러니까 물질과 형식이 본질인 줄 아는 사람이고, 온 천지의 영광을 보여주며 이것을 줄 테니 절하라고 하는 마귀의 시험에 굴복하고 세상이 본질이라고 여기며 절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돈이 전부인 줄 알던 사람이 거지가 되면 세상이 망했다고 한다. 또 명예가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은 수치를 당하면 세상이 망했다고 한다. 여자에게 순결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는 순결을 잃으면 자결하도록 한 것은 순결=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치관, 그런 사고방식으로 볼 때, ‘세상이 망한다.’하니 이 지구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히 이 지구가 세상의 본질이고 전부인 사람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세상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본질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심을 아시기에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을 이기신 분이신 것이다. 그런 예수님께서 기껏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망하는 것이나 예언하시려고 십자가 지시기 전 그 아까운 시간을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세상이 망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세상의 주인인양 살아가다가 때로는 자기가 세상과 자기 삶의 전부라 여기던 것을 잃기도 한다. 재산이나 명예를 다 잃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자기 세상이 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 그 세상이 망하는 사람은 자기가 옳게 여기고 전부라 여긴 세상이 망하고 나서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 그들에 대한 말씀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돈이 전부고 중요한 사람이 거지가 되고 사업이 망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과 같이 망하기 전과 동일한 세상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세상을 망하게 하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물리적인 세상을 망하게 하시고 다시 이 땅에 같은 세상을 만드실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망시킨다면 다른 것을 세우기 위하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세상은 예수님과 같이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마치 남자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여자가 세상을 보는 관점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돈이나 명예나 자식 사랑과 같은 것이 인생의 의미이고 자기 세상의 전부요 그것이 세상이든 사람이 예수님께서 자기 마음에 오심으로 이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보게 되는 것을 위하여 이전의 자기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즉 본질 아닌 것이 본질인척 하고 있는 것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그 속에서 어리석게도 그 세상의 가치기준인 돈과 명예와 같은 것이 자기 세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본질 아닌 것이 자기 안에서 버젓이 본질인양 자리하고 있었던 그 가증한 멸망의 일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사람이어야, 그것이 눈에 보여야만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재림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 자기 세상이 망하는 멸망의 징조라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 망하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본질인 것이고, 그것을 아는 사람이 약속을 받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어야 실재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하여 확신이 있는 것이다. 약속이 그 안에 있으니 증거는 절대적이진 않지만 확신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세상이 망한다고 하시는 이유, 하나님께서 세상을 망하게 하시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세상, 그것이 물리적인 세상이든 아니면 자기가 세상으로 여기는 가치관과 안목이든 그것을 망하게 하시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시 그런 세상을 재건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드시기 위하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가 또 다른 나를 정복하는 것은 그 나라를 자기의 의로 다스리기 위함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가진 자기의 가치관을 망하게 하시는 이유는 당연히 하나님의 의와 가치관이 그 사람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다스리고자 하시는 그 세상이 깃든 사람은 원래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지으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것은 더욱 당연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예수님께서 세상의 멸망을 이야기 하시는 것이 어떻게 물리적 세상의 멸망을 말씀하시는 것이겠는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상에 관하여 어떤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본질인 줄 알고 이 세상이 존재하게 된 이유와 목적을 모르고 외면하며 내용과 목적이 아닌 형식만 중요하게 여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셨던 것이다. 그런 예수님께서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멸망을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말씀하시고자 하신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 지으신 목적을 전하기 위하심이다. 즉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기준과 의로 세우고 정의내린 자기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과 의가 열리는 세계를 맞이하는 세상의 변화를 위하심이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뜻이 자기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물리적인 세상이 천 번 망하고 새롭게 된다 하여도 아무것도 아니다. 즉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세상은 의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정의내리며 살아가는 자기 의가 다스리는 자기 세상이 망하고,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인생이 되어 세상과 인생을 보는 가치관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그런 안목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보이신 세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면, 어느 때가 될지 알지도 못한 세상의 멸망을 고대하는 것이나, 예수님이 자기 안에 재림하시는 약속이자 본질은 알지 못한 체 막연히 자기 안에 없는 것을 신념으로 의지로 억지로 믿어가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형식 밖에 없는 바리새인 같은 신앙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세상이 망하면 예수님께서 그 심령에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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