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34)

이제 산상수훈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다만 알고는 있지만 대개는 머리로만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참 간절하게 독자를 설득하고 싶은데, 바로 많은 사람의 기도가 세상의 성공과 영광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다는 걸 시인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육신의 문제(엄밀하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해 자기는 깨끗하다고 믿는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 양심을 가지고 자기 기도 제목을 반추해 본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질 지 모릅니다

 

먼저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 속에는 누가 이방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고 염려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해도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본성(DNA)이 아닌 사람은 모두 육신의 목숨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이방인입니다. 이게 간단해 보이지만 매우 엄격하고, 중한 사안입니다.

이방인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에 통치를 받지 않는 백성

 

여기에 나오는 목숨은 피조물로서 호흡하며 자기 생존과 본능을 유지하려는 자연적 생명·자아를 뜻하는프쉬케(ψυχή)’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참고로 성경에 나오고 우리가 생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주로 조에(ζωή, zoē)’로 하나님의 신적 생명, 즉 하나님이 살았다고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조에(ζωή, zoē)’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기준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프쉬케(ψυχή)’는 의학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 곧 목숨을 의미합니다. (이걸 보면 한국 초대 교회 성경을 번역하신 분들의 안목이 참 놀랍습니다)

 

여기서 프쉬케(ψυχή)’가 가지는 의미는 제법 중요합니다. ‘피조물로서 생명을 의미하는데, 의학적으로 살아 있는 육신의 생명을 말합니다. 핵심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란 창조주가 있고, 창조주가 창조한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창조주는 피조물이 창조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것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분명한 뜻과 의지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만 인정해도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거나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내 인생의 목적이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제공하신다

 

늘 비유하듯이 자동차를 구매한 사람은 정비하고, 주유하고, 세차할 의사와 능력이 있으며, 또한 늘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는 이상 그 목적 달성에 필요한 것 역시 항상 우리에게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나는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걸 믿는다면 목숨의 필요에 관한 것은 당연히 공급한다는 걸 믿는 믿음을 당연하고, 부수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또 집에서 육신이 세상에서 사는 필요와 궁핍을 간구한다는 건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간구의 순서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에 대한 예의와 공경으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은 다음 순위에 놓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건 하나님의 통치에 속하겠다는 뜻입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아주 늙어서 유산 상속자인 아들을 얻습니다. 하지만 분명 아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모든 재산은 자기 종인 청지기 집사에게 남기면서, 아들이 성인이 되면 아버지의 재산이었던 것 중에 단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깁니다.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처음엔 낙심했고,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내 아버지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종이었던, 전재산을 상속받은 그 청지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마치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뜻, 그 하나만 구하면 나머지는 모두 얻게 됩니다. 전지전능하시며, 신실하시고, 실수도 않으시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내가 필요해서 집행하는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이것이 여호와 이레, 진정으로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나,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미 밝히 말씀하셨다

 

사람은 인생을 하나님이 매복해 놓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출제 의도(의와 뜻)이 무엇인지 알기 원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면서 기도하고, 또 설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이며, 그건 이미 창세기에서 말씀하셨고, 그걸로 부족하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다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에게 밝히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사람을 통해 영이신 하나님의 성품, 그것도 십자가를 지는 낮고 겸손하고 섬기며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역시 상기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뜻이 땅(사람)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시며…’라는 간구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같은 목적, 같은 의미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깨달어야 합니다. 이게 열리지 않으면 눈의 밝음과 빛이 없는 신앙입니다.

 

물론 우리는 살아가면서 육신의 결핍으로 인한 곤고함을 끊임없이 겪습니다. 가난과 고난과 비난은 아무리 오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자가 되려고 사는 것도 아니고, 평안히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도 아닙니다. 그게 목적이고 성공한 인생이라면 예수님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모두 실패자입니다. 더 웃긴 건 그 실패자들의 말씀을 들고 우리는 인생의 성공을 바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장난감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천지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 있는 겸손히 낮아져서 사랑으로 남을 섬기는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낮아지고 섬기는 삶의 모양이 어떻게 세상이 추구하는 피라미드 꼭대기로 가는 가치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나 하나의 인생부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며 보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 그 하나만 구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걸 위해 살아가는 육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고백과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