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9-21)
예수님께서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원어(헬라어)의 문장을 직역하면 흥미롭습니다. 직역하면,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테사우로스-θησαυρός : 보물)을 땅 위에 쌓아 두는 짓(테사우리조-θησαυρίζω : 보물을 쌓다, 창고에 축적하다)을 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테사로우스, 테사우리조는 모두 ‘쌓아두다’, ‘저장하다’라는 동사 티테미(τίθημι)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번역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킹제임스 버전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보물(Treasur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물론 금은보화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지만, 지금 예수님은 그걸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정도는 이런 원어를 검색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보물의 의미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그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보물은 하늘에 쌓아 두는 보물입니다. 그래서 좀과 동록에 의해 해하거나 도난 당할 일이 없는 보물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땅에 쌓아 두는 보물은 그와는 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보물이 두는 장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보물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늘과 땅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이걸 설명합니다.
사람에게 하늘은 단지 머리 위에 있는 푸른 우주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하늘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일들을 ‘하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게 그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땅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사람이 흙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개념을 연결하면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게 됩니다. 땅에 속한 모든 것은 하늘의 변화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흐리면 우산을 써야 하고, 하늘이 추워지면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두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
그렇다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내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보물은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인데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으니 내 마음이 하늘의 뜻에 있으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물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자기 마음을 두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 자체입니다. 이는 곧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령에 거하시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하늘에 내 보물이 있다는 건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걸 나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뜻, 우리가 가치로 여겨야 하는 보물은 무엇인가?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물은 세상의 보물과 다릅니다”라는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 대개 여기서 끝입니다. 하나님의 보물에 대해 더 상세히 듣기 힘듭니다. 물론 우리는 약간 막연하긴 해도 하나님의 보물과 세상의 보물이 다를 것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다른데?”라고 묻는다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알아야 이 말씀을 바로 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시스템은 세상의 가치로 귀한 것을 구분
우리는 상용구처럼 세상의 영광과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구한다고 말하고 생각합니다. 막연하게 세상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으로만 하나님의 가치를 아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세상이 귀하다는 걸 귀하게 여기지 않는 진정한 모습은 다른 가치를 발견하여 확실히 알고 그걸 추구할 때 온전하여 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귀한 보물을 발견하고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사는 비유(마 13:44-46)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두는 보물이 무엇인지를 남에게 전할 정도로 바로 알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세상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로는 하늘의 보물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보화는 우리가 익히 알듯이 세상의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무엇보다 가치의 방향이 다릅니다.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피라미드의 위로 올라갈수록 귀해지는 것입니다. 과장보다 부장이 귀하고, 은보다 금이 귀합니다. 이와 같은 방향성을 가졌다면 교회 안이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 있다고 해도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목사님이 더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하고, 강대상에는 아무나 올라갈 수 없고, 장로여야 기도할 수 있는 이런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모두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귀하게 여기는 세상 가치관에 종속된 세상의 보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에 없는 귀한 보물은 낮아지는 것을 귀한 것으로 아는 생명의 본성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반대입니다. 더 이상 낮아질 수도, 천해질 수도 없는 자리가 바로 죄인 그것도 사형수의 자리입니다. 이건 피라미드의 바닥으로 향하는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전혀 가치가 없는 게 귀한 곳이 바로 하늘입니다. 건축자가 보기에 쓸모 없다고 판단해서 버리는 돌이 모퉁이 돌이 되는 세계가 바로 천국에 두는 보물의 가치 기준입니다. 감히 말하지만 오늘날 이 법으로 운영되는 교회는 사실 거의 없습니다. (세상에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마저 없다면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을 겁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잘 인정하지 않지만 거의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찬송하는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목사가 더 높은 자리에 앉고, 장로여야 대예배 기도와 교회 기관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방향성은 아무리 미화해도 분명 피라미드의 위로 가는 걸 귀하게 보는 가치관입니다. 이런 보물은 모두 땅에 두는 보물입니다. 세상의 가치로 귀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면 복음은 아주 요원한 것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정말로 낮고 천한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게 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에 없는 가장 귀한 것을 까보니 그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가는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임을 아는 것이 진정한 보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이것을 알고, 여기에 자기 마음을 두는 것이 바로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 쌓는 보물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에서 낮은 자리로 가게 되는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는 본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이 보물만 하늘에 쌓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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