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4)

예수님께서는 외식을 항상 경계하셨습니다. 물론 보통의 사람 사회에서도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멀리하기 마련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외식을 말씀하셨는데, 그 중심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은 생명이 심령에 있어 그 생명의 본성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인데, 사람이 생명은 없으면서 그 생명 본성의 행동을 따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회 칠한 무덤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신 것에서 생명이 없는 행함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과 궤를 같이 합니다.

 

외식하는 자는 당시 배우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외식하는 자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휴포크리테스(ποκριτής)이며, 그 동사형은 휴포크리노마이(ποκρίνομαι)인데, 이 말은 ‘~아래에(뒤에)’를 뜻하는 전치사 휴포(πό)판단하다, 정산하다, 대답하다를 뜻하는 동사 크리노(κρίνω)의 합성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걸 풀어서 해석하면 자기와 다른 모습 뒤에 숨어서 판결이나 대사를 읊으며 남을 속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당시 가면을 쓰고 연극하던 배우를 가리켜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외식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조명하면, 외식은 내용과 형식이 다른 삶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라는 내용을 삶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벗어난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바로 자기 자리를 떠난 죄의 상태에 있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신 말씀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겉과 속이 일치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외식하는 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지 않는 모든 사람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생명 본성이 아닌데, 성경대로 사는 삶, 마치 구원받은 자의 본분을 행하듯이 신념으로 노력하는 모든 삶과 신앙적 모습은 예수님이 특히 경계하신 외식(하는 자)입니다.

외식은 내용과 형식이 다른 삶과 신앙의 모든 것

 

예수님께서 외식을 구제와 기도 그리고 금식에 이르기까지 대칭점을 삼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때문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입니다. 즉 물리적 형상이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빗대어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을 설명하는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물리적 실존은 없지만 분명히 살아 계신 분이시며, 실존하시기에 자신을 표현하시려 하십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실존과 특히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형상이 있는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창조한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 즉 살아 있는 영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생령, 즉 살았다는 건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의도가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달성된 사람이어야 하나님이 살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 즉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사람 안에 내용으로 있으면 산 사람이고, 그게 없다면 의학적으로 살아 있다고 해도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죄와 사망가운데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형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룩한 성전이라고 하십니다.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심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이 생명이 되어 우리 육신이 그 뜻을 나타내도록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도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이것이 우리의 바로 거듭남이고 구원입니다. 이 상태를 내용과 형식으로 표현하면 내용과 형식이 하나가 된 상태입니다. 바로 외식하는 것과 반대인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 그리고 삶이 모두 하나인 상태, 이것이 바로 구원이고, 말씀이 육신이 된 외식 없는 신앙과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과 관련하여 먼저 구제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쉽게.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으려는 구제는 외식이며 이미 상을 다 받았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상은 보수의 의미입니다. 즉 자기 행위에 대해 값을 받는 것이고, 자기 의도대로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사람 앞에서 행했으니 그것으로 등가 교환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오른쪽은 의를, 왼쪽은 형식을 상징합니다. 남자가 의를 여자가 형식을 상징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로 표시하고, 예수님의 족보는 남자가 낳은 것으로 이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크다고 하신 건 세례 요한이 율법적인 신앙과 그 형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신앙의 최고라는 의미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오른손의 일은 왼손이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어…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오른손은 하나님의 일이고, 왼손은 세상과 그에 속한 일입니다. 오른손이 왼손 모르게 한다는 건 하나님의 일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을 다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야 합니다. 생명이 본성대로 하는 건 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라면, 그 생명의 본성대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른손의 일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행하는 왼손의 일과는 무관하게 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구제하는 건 자기 상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왼손이 모르게는 인지하지 못하게 했다는 의미보다는 왼손으로 대변되는 세상이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일인 구제를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여기서 구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제라는 건 근본적으로 결핍에 대해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자비와 긍휼을 가지고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푸는 것이 구제입니다. 원어 엘레에모쉬네 (λεημοσύνη)’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은혜를 베푸는 것이 구제라는 건 당연하게 들리지만 아주 중요합니다. 은혜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알 수 없는 존재의 목적을 알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구제

 

사람이 절대 자기 힘으로 알 수 없는 건 자기 존재의 목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스스로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가 존재하는 목적을 아는 게 얼마나 알기 어려운가 하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어야 겨우 사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공로에 감사하는 이유는 이렇듯 피조물인 나는 나의 존재 목적을 스스로 알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면서 나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이 은혜를 베풀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제는 당연히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가난한 자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사람을 돕는 구제를 주제로 말씀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과 이걸 전하러 오신 예수님의 직임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그냥 괜찮은 도덕책이자 신화가 됩니다.

 

이 구제를 명확히 이해했다면 이 구제는 왼손이 알게 하려고 해도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이 알지 못하더라는 말씀이 바로 이를 증명합니다. 오른손의 구제,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은 왼손인 세상이 알려 해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온전한 구제는 왼손은 알려 해도 알 수 없는 구제입니다. 구제를 하면서 감추지 않아도, 구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면, 왼손은 아예 신경도 안 씁니다.

 

우리가 베푸는 구제는 곧 예수님처럼 나의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어 우리가 은혜를 입었듯이, 우리 역시 내 육신의 수고를 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구제를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할 수 있는 건 사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육신을 드려 수고한 결과입니다. 즉 많은 이들이 자기 육신을 드린 오른손의 구제를 했기에 오늘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잊으면 안 되며 받은 대로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나의 십자가를 지고, 그러니까 내 육신으로 겸손하고 낮은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로 거듭난 생명의 그 본성대로 살아 다른 사람에게 또한 이 은혜를 전하는 것이 왼손이 모르는 오른손의 구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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