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빛과 소금의 착한 행실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2026) 산상수훈 Date : 2026. 6. 26. 09:15 Writer : 김홍덕

( 5:13-16)

기독교 신앙을 넘어 빛과 소금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만큼 의미 또한 확실합니다. 이렇듯 유명한 예수님의 이 말씀 중에는착한 행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빛과 소금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빛이 밝히는 것과 소금의 맛은,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실재를 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행위로 의로워질 수 없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행실이 사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통로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더 깊이 상고하게 만듭니다. 그저 문자 그대로만 알고 넘어가려는 신앙생활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되새김질하는 짐승만 먹으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듯 깊이 묵상하라는 뜻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성경을 이처럼 상고하고 그 의미를 새겨 깨닫는 것, 그리고 그 깨달음이 내 생명의 본성을 깨워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언제든 필요한 도구를 활용해 말씀의 배경을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또한 성경대로 살려고 할 때 어려움을 느낀다면 이처럼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관점을 가지고 우리는 행위로는 의로워질 수 없다는 명확한 진리를 기준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마태가 왜 굳이착한 행실이라고 기록했는지를 그 본질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과연 여기서 말하는 착함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도덕적 선함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되새김질해 보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착한 행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길가의 휴지를 줍고, 말을 선하게 하며, 도덕적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 역시 삶으로 드러나는 모습이겠지만, 본질은 그런 행위를 자아내는심령의 본성에 있습니다. 이 착한 행실 속 착하다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칼로스(καλός)’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감탄하셨을 때, 70인역 성경이 바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이고 미적인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피조물이 창조된 목적과 의도대로목적이 달성된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착한 행실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표현해 내는 삶입니다. 성경에서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창조주를나타낸다는 뜻이며, 이는 곧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된다’, ‘온전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드러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 빛과 소금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만드는 그 삶과 행실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동할 수 있는 육신을 사람에게 주신 진짜 창조 목적입니다.

 

이 착한 행실의 DNA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자리가 바로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의 존재 목적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전히 드러내시니,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의 참된 존재 목적, 곧 착한 행실을 목격하고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이 등불이 말 아래 있지 않고 등경 위로 높이 들렸기에 그 십자가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아버지의 뜻과 의가 육신이 된 자를 뜻하므로, 아들이 드러났다는 것은 결국 아버지가 세상에 증명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아들의 됨됨이를 보면 그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다는 세상의 이치 역시 이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빛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 하나님을 인식하게 만들고, 소금은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의 자리에서 벗어나 부패하는 것을 방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인생의 목적이자 삶의 본능으로 거듭난 사람이 살아내는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또한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자리를 떠나 부패하는 흐름을 막아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선언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빛과 소금의 착한 행실은, 휴지를 줍는 수준의 도덕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에 그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의 모든 삶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칭찬할 만한 행실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착한 행실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세상의 도덕적 행위는 사회적으로 권장하여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생각에 머물러야 합니다. 휴지를 줍는 행실이 아니라 내 목숨을 내어주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본질은 다릅니다. 학교나 교회에서 배워서 의무감으로 하는 행실이거나, 미래의 축복을 기대하며 혹은 당장의 벌을 면하기 위해 행하는 율법적 행실은 십자가의 도와 전혀 결을 달리합니다. 그 일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선포한 말씀의 본질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3)

 

그러므로 겉보기에는 비슷할지라도, 세상의 칭찬을 얻기 위해 행하는 것과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다면 나도 예수를 믿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이끄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세상의 유익을 위해 행하는 도덕적 선행 역시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생명이 없지만 알곡과 비슷한 가라지에 불과합니다. 특히 십자가의 낮아지는 본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착한 행실과, 천국에서의 상급이나 이 땅에서의 화를 피하려는 보상 심리로 행하는 행실(설령 그것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습관화된 모습일지라도)은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착한 행실은 앞서 설명한 대로 오직십자가만이 유일한 표본입니다. 사람의 도덕 역시 십자가를 지는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표현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성품, 곧 낮아지고 겸손하며 자신의 육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의 본성에서 출발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착해 보일지라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착한 행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낮아지는 본성을 인하여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그리스도라는 생명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두움에서 하나님을 목격하게 만드는 참된 빛입니다. 또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자기 자리를 떠나 부패하지 않도록 붙드는 유일한 소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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