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예배 시간에는 대표기도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예배'라고 부르는 주일 낮 예배 시간에는 장로가, 그 외의 시간에는 교회마다 다르긴 하지만 최소한 집사 이상의 직분자들이 기도를 맡는다. 예전에는 기도문을 써 와서 읽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지만, 이제는 그것이 '정배(정석)', 즉 당연하고 정상적인 기도 방식이 되었다. 미리 준비해 와서 읽는다는 사실 자체로 기도의 수준을 논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내용이다.
우리 예배의 가장 기본 골격은 '말씀의 선포'와 '성도의 화답'이라는 조합이다. 그리고 공중 예배의 대표기도는 바로 그 성도의 화답을 대표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선포된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가 살 수 있기를 간구하는 형식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대표기도가 설교 다음에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무조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도의 내용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앞서 선포된 설교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해야 할 테니 말이다.
오늘날 일부 장로들의 대표기도를 보면 예전 '사영리(4영리)' 식의 기도를 하곤 한다. 다시 말해, 성도들은 모두 회개할 것만 있는 사람으로, 세상은 온통 죄악뿐인 곳으로 간주한 채 기도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런 전제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게 개인적인 참회 기도라는 점이다. 물귀신처럼 성도 전체를 그런 프레임으로 끌고 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평소에 거의 기도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 있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서리집사의 기도가 처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평소에 기도를 쌓지 않았기에 기도 순서가 돌아오면 그저 오래전 기억 속에서 '좋았다'고 여겨지거나 '마땅히 해야 한다'고 간주되는 내용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배 시간에 대표기도를 맡은 이들에게 그 시간과 순서는 큰 스트레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한 스트레스가 되고 앞서 말한 사영리 수준의 기도에 머무는 것은, 정말로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이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늘 깨어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는, 기도를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쪽박)는 들에서도 새는 법이다. 집에서 기도하는 만큼, 일상 속에서 주님과 교제하는 만큼 대표기도의 영성과 은혜가 묻어난다. 성도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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