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 3:3-11) 간증과 보증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디도서 Date : 2026. 5. 27. 06:54 Writer : 김홍덕

3장 후반부로 가면서 바울 사도는 디도에게 자기 간증을 전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지금껏 권면한 말씀들이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은혜라는 걸 간증하면서 디도의 사역을 보증하여 확신과 소망과 자신감을 불어 넣고 있다. 꽃게가 새끼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달리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구원은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확실한 증거를 전하고 본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자기와 디도를 포함한 사역자들 역시 이전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은혜를 입어 영생의 소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상기한다. 이 모습을 보는 오늘 우리 역시 바울 사도 같은 간증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같은 간증은 같은 생명이라는 증거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바울 사도와 생명이 같아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다. a apple the Apple 안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일 때 그리스도 안에 있고, 같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 형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과 의와 뜻과 구원의 도를 선택하여 순종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맡은 청지기다. 이렇게 우리가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의지를 신학에서 자유의지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자유로운 선택의 권한과 의지를 가지고 인생은 내 것이라며 생각하고 산 것이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딛 3:3)

 

먼저 우리는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였다. 우리 존재의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데, 우리는 하나님을 내 존재의 목적을 가진 신으로 믿지 않았기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인식하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욕과 행락을 추구했다. 선악과를 먹은 자신에게 속은 것이다. 그리고는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피라미드 체계의 세상에서 높아지려고 악독한 마음으로 투기하고, 피차 미워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운 모습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육신이 되신 분이기에 하나님 아들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여 아들인 존재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여 주셨다. 존재를 인식하나 존재의 목적을 상실하고 인생이 자기 것으로 아는 우리 모두에게 보이고 가르쳐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낮아지고, 겸손하며, 섬기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본성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그 모습이 곧 우리의 존재 목적이자 하나님의 의와 뜻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이전에 인생을 자기 것으로 여기며 살던 길에서 스스로 돌이켜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리스도라는 생명이 나의 본성이 되어야 함을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명이 된 거듭난 사람이 된다. 이것이 이전에 어리석었던 삶에서 은혜의 구원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구원의 섭리 안 어디에도 우리의 행위가 기여하는 바는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 목적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셔서 우리에게 존재의 목적,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을 보이셨다. 우리는 이 섭리에 기여한 바는 없고, 단지 그걸 믿을 것인지만 결정하면 된다. 이전에 인생을 내 것으로 알고 살던 삶이 죄악인 줄 깨닫고 고백하면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으로 새롭게 하신다. 이처럼 모든 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거듭난 생명인 사람은 당연히 생명의 본능에 따라 그 후사를 얻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전도며 말씀 선포다. 그리고 이걸 이루는 방법이 바로 경건한 삶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보고 하나님이 인생을 주신 목적이 그리스도라는 겸손한 생명인 것을 알게 되었듯,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거룩한 경건을 보고 사람들이 또 그리스도의 생명을 이어가는 후사가 된다. 사도 바울은 자기 간증으로 디도가 이 연속성 위에 있다고 보증하고 있다.

 

이것은 아름답다. 특히 인생의 목적을 몰라 평생을 방황하는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유익이다. 그러나 이 생명에 순종하지 않으면 여전히 어리석고, 헛된 삶을 살게 된다. 존재인 것을 인식하면서 존재의 목적도 모르는 삶보다 헛된 건 없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디도에게 확신을 주는 자기 간증을 들어 보증하는 복음이다.

 

그리고 덧붙여 이 복음과 달리 이단에 빠진 사람에게는 훈계한 후에 듣지 않으면 멀리하라고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 복음을 전했는데 듣지 않으면 신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라고 하신 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섬기는 마음과 심지어 구걸하듯이 낮은 마음과 경건한 삶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 까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순종할 권한이 있으므로 선택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강제로 교회에 끌고 온다고 될 일은 아니다.

 

믿지 않는 자나 이단이나 같다. 결국 그들은 죄를 끊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경건한 삶과 말로 복음을 전하는 데 까지다. 이게 한정 짓는 것 같지만 이게 우리의 본본이고 여기까지가 우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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