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성별에 따른 세대별 권면은 ‘종’이라는 아주 특별한 신분에 관한 말씀으로 마무리된다(딛 2:9-10). 문자 그대로만 읽는다면 이는 고대 로마 사회에 존재했던 노예 제도 하에 있던 종이라는 신분을 가진들에게 국한된 시의성 낮은 훈계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말씀의 행간을 깊이 들여다보면, 바울이 말하는 종은 단순히 억압받는 하인이 아니라 무언가를 위임받은 ‘맡은 자(청지기)’임을 알 수 있다.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딛 2:10)
주인의 것을 ‘떼어 먹는다’는 표현 자체가 이미 그에게 무언가를 관리할 권한과 재정이 맡겨져 있음을 전제한다. 더불어 그들의 선한 충성이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세상 가운데 ‘빛나게 장식하는’ 목적을 가진다는 점 역시, 이들이 수동적인 노예가 아니라 주인의 명예를 어깨에 짊어진 청지기임을 증명한다. 앞서 1장 7절에서 감독을 ‘하나님의 청지기’라 부른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직분과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께 인생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위임받은 '맡은 자' 곧 종이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주인과 종’이라는 상호 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가지 관계로 동시에 고백하곤 한다. 이는 대충 은유적인 표현이겠거니 하며 넘길 사안이 아니다. "왜 우리는 아들이면서 동시에 종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을 오해 없이 합당하게 살아낼 수 있다.
- [존재 정체성으로서의 ‘아들’] 아들이란 아버지의 생명과 의(義)를 물리적 육신으로 표현할 상속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 땅에 나타낼 ‘존재적 정체성’의 관점에서 그분의 아들이다.
- [존재 목적의 관점으로서의 ‘종’]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의를 표현하기 위해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마치 스마트폰이 사용자에게 통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고유한 의무(빚, Debt)를 지고 태어난 것처럼, 피조물인 인간 역시 창조주의 목적에 절대적인 빚을 진 존재다. 그리고 이 존재론적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기꺼이 ‘종’의 자리에 서게 만든다.
즉,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존재의 정체성이라는 면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존재의 목적과 사명이라는 면에서는 '하나님의 종'인 것이다.
사람은 이렇듯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빚진 종이다. 우리는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육신의 삶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죄가 바로 빚(debt)라는 것도 궤를 같이 한다. 우리는 이 육신으로 하나님의 의를 표현할 때 하나님 앞에 죄가 사라진다.
성경이 말씀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경건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 하나님의 성품과 의를 표현하는 삶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 이상의 경건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육신, 곧 나의 생명과 본성이 되어야만 발현된다. 아니 생명이 있어야만 본성이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나는 걸 구원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나의 의를 표현하던 생명이었다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라는 의와 뜻이 육신이 된 생명으로 거듭나는 게 구원인 것이다.
따라서 창조 목적 아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생을 맡은 존재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인생을 자기 것으로 여기면 그게 떼어 먹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주신 인생을 자기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건 회사를 위해 맡진 재정을 자기 이익을 위해 지출하는 횡령과 같은 것이다. 피조물인 우리에게 경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아니 그것이 본능이어야 한다. 본능이 있으려면 당연히 생명이 있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인생을 내 것으로 착각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떼어 먹는 가증한 횡령의 삶을 멈추고, 하나님의 성품을 빛나게 나타내라는 창조하신 목적에 선한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경건이며, 존재의 목적이고, 삶의 본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충성은 바로 이것,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평교인의 성경 보기 > 디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딛 2:1-8) 생명의 본성, 세대를 잇는 경건의 형식 (2) (0) | 2026.05.22 |
|---|---|
| (딛 2:1-8) 생명의 본성, 세대를 잇는 경건의 형식 (1) (0) | 2026.05.21 |
| (딛 1:10-16) 하나님을 시인하나 삶은 가증한 할례당 (2) (0) | 2026.05.20 |
| (딛 1:10-16) 하나님을 시인하나 삶은 가증한 할례당 (1) (0) | 2026.05.19 |
| (딛 1:5-9) 거듭난 생명의 모범인 장로 (2) (0) | 2026.05.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