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프로그램 코딩에서 언어와 변수, 함수를 선언하듯 서신의 서두에서 언제나 자신의 사도 됨을 선언한다. 디도서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전하는 말씀의 근거와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함이지, 타인에게 사도의 직분을 인정받으려는 목적이 아니다. 사역 초기에는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보였을지 모르나, 디도서를 기록할 즈음의 바울에게 그런 형식적 인정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의도한 것은 지금 전하는 메시지가 곧 '하나님의 복음'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는 인사 속에서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이라는 표현이 특히 눈에 띈다. 우리가 비록 신학이나 헬라어를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디도서의 전체 맥락을 통해 이 구절이온전한 진리에서 비롯된 경건혹은진리를 알면 반드시 경건해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행함보다 믿음을 유독 강조하는 듯 보였던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또 다른 색채를 띠는 대목이다.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 1:1-3)

 

이를 정리해 보면, 사도의 덕목에는 온전한 진리에서 비롯된 '경건한 삶'이 반드시 포함된다는 의미다. 바울은 자신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 사도가 되었음을 선언함으로써, 이후에 전개될 "성도는 마땅히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권면이 곧 하나님의 복음임을 강조한다. 이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행함은 믿음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강력한 선언이다.

 

더 나아가 바울은 이러한 경건한 삶이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영생의 소망'에서 비롯된다고 단언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 복음을 맡기셨음을 분명히 하며, 디도 역시 같은 믿음 안에 있음을 보증한다. 이는 우리 신앙에서 경건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 준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가 과연 경건의 가치를 이토록 무게 있게 대했는지 자문하게 된다. 우리 또한 디도처럼 이 살아있는 믿음 안에 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경건을 약속하셨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단순히 그레데 지역의 불의한 특성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강조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인간을 통해 자신의 성품을 온전히 표현하시려는 데 있음을 기억한다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투영된 삶이 경건하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이 문제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는 '방향성'에 있다. 경건한 행동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은 경건이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이 내면에 자리 잡으면 삶은 자연스럽게 경건해진다는 방향을 가리킨다. 이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이 방향성에 관한 깨달음은 단순히 "아 그렇구나" 하고 감탄할 수준의 지식이 아니다. 이는 우리 구원과 생명의 근간에 관한 결정적인 원리다. 많은 신앙인이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경건의 실체는 생명의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다. 생명의 본성에서 비롯된 현상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확실하다. 고양이를 죽일 수는 있어도 개로 만들 수는 없는 이치와 같다.

 

생명에서 비롯되는 경건은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숨길 수 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기에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며 고군분투하는 많은 기독교인의 삶이 과연 이러한 생명의 방향성을 따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이라는 생명의 뿌리에서 자연스럽게 경건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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