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정죄하고 심판하는 죄, 선악과
죄는 정죄하고 심판하는 존재의 정체성에 종속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는 당연히 하나님의 정체성에 종속된다. 중심을 보시는 분에게 행동은 정죄와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핵심은 사람 안에 있는 자기 의로움이다. 그 의로움이 행동이 된다. 여기서 <선악과>라는 성경의 핵심적인 주제가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근원적으로 죄로 정죄하신 게 선악과이므로 이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죄와 회개와 구원의 깨달음이 모래성이 된다.
선악과는 인류 죄의 시작이자 근원이다. 우리는 모두 인류의 일원이므로 내 안에 있는 선악과를 제거하는 것이 진정한 죄사함의 본질이다. 그런데 신앙인 대부분은 이 선악과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여러 의문들이 있음에도 그냥 예수님의 십자가로 해결된 것이라고 퉁 치듯 생각하고 등한시한다. 하지만 선악과는 분명 우리 모든 죄의 근원이자 시작이므로 이를 분명한 나의 문제로 알고 명백히 이해해야 구원과 죄사함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이야기할 선악과는 단순한 불순종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먼저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 전후의 정황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먼저 선악과를 먹게 된 동기는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었다. 뱀이 그렇게 유혹했다. 즉 선악과를 먹은 건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이라는 유혹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건 우선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지는 걸 탐한 것일 수 있지만 본질은 <주권>을 가지는 것이다. 즉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건 인생의 주권을 내가 가지겠다는 의미다.
주권자가 가지는 가장 명백하고 분명한 권력은 선악의 판단의 주권이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의와 기준을 가지는 게 주권의 본질이다. 옳다고 판단한다는 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고, 악하다고 판단한다는 건 그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먹었다는 건 사람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자기가 가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인류는 모두 자기가 옳다는 것을 판단하고 있다. 자기 기준으로. 즉 자기가 먹은 선악과, 자기 선악의 기준으로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사람 사회의 모든 갈등은 ‘내가 옳다’는 생각의 충돌이다. 이건 대단한 철학적 고찰이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솔직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짜증나고 화나고 분을 내는 모든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다. 내 생각대로 되는데 화를 내거나 죄를 범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사람이 화를 내고 죄를 범하는 근본 원인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다. 그리고 그 생각의 기준이 바로 선악과다.
따라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려는 모든 사람은 선악과를 먹은 상태다. 사람은 자기가 옳다는 걸 인생으로 구현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옳다고 여기시는 걸 육신으로 구현하는 게 목적인 존재임에도 자기가 옳다는 걸 추구하며 사는 게 그 증거다. 이것이 선악과의 본질이고 인류의 원죄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의와 선)이 아닌 자기가 선과 악을 판단하는 상태를 설명하는 사건과 말씀이다.
이걸 바로 이해한다면 다음 단계인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에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기를 바라시지만, 그렇다고 자기 의사 없이 아바타나 로봇처럼 마냥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존재를 원하시는 건 아니다. 로봇과 아바타 같은 존재라면 하나님이 영광을 얻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하나님의 뜻이 옳음을 깨닫고 그 뜻에 스스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왜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지도 아울러 설명된다.
그럼 사람이 순종하려면 사람에게 스스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야 한다. 최면술이나 몽유병 환자처럼 마냥 하나님만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순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럴 수 있게 허락하셨다. 이게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다. 그리고 이건 단순한 허락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선악과도 선택할 여지를 두셨고, 동물들의 이름도 아담이 짓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 권한을 <자유 의지>라고 부른다.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그 권한으로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걸 선택했다는 것이다. 바로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류의 원죄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 자기는 선악과를 먹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모든 인류가 예수님의 십자가 의미를 바로 알기 전에는 모두 자기가 옳다는 걸 성취하는 걸 인생의 목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이 때로는 인류를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인류를 구원하는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스스로 순종하는 것이다. 괜히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어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다. 사랑은 관계의 의미, 의미 있는 관계의 모든 것이므로 하나님의 의와 뜻이 나의 모든 의미가 되는 게 바로 사랑이다.
이 원죄로서 선악과의 의미를 아는 건 신앙의 핵심이다. 하나님 앞에 내가 회개해야 하는 건 어제 화를 낸 일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세상과 사람을 선악 간에 판단하며 살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통렬한 회개가 없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선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가 없는 사람이다. 즉 죄가 여전한 상태다. 이걸 모르고 회개하고 예수 믿는다고 생각한다면 매우 곤란한 인생이다. 낭패를 당하는 건 몰라서가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여기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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