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는 기독교 신앙의 뿌리 중의 뿌리지만 이걸 잘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학문(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게 당연한 것 같지만 우리는 신학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며학문의 영역에서 세개의 개체가 하나가 된다는 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신학이 아니라면 어떻게 삼위일체를 이해할 것인가? 삼위일체는 내 개인의 신앙 상태의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고 체휼하는지에 따라 삼위의 하나님이 된다. 나에게 하나님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 그래서 절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나는 그의 아들이 되며 그의 영이 내 생명의 본성이 되는 하나님의 관계, 이것이 삼위일체의 본질이다.
나의 구원과 거듭남 전과정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삼위일체의 하나님!
우선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이 삼위는 말 그대로 일체(一體)다. 여기서 성부, 성자, 성령을 개별적인 존재로 간주하고서 시작하면 여러가지로 이해가 어렵다. 우리는 성경의 핵심 중의 핵심인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대 명제를 벗어나면 안 된다. 그러니까 성부, 성자, 성령은 분신술처럼 다른 모습, 다른 성품의 하나님이 아니다. 이게 흔들리면 비단 삼위일체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근간이 흔들린다.
성부 하나님
그럼 먼저 일반적으로 하나님으로 정의하는 <성부 하나님>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성부) 하나님’이라 부른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게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부르는 호칭이므로 성부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의미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이 근원적인 것을 외면하면 안 된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사람에게 삼위일체는 아무 상관없는 하나님의 정체성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하나님의 말씀을 일컫는 세 가지 표현을 잠깐 살펴 보자.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λόγος)’, ‘케리그마(κήρυγμα)’, ‘쉐마(שְׁמַע)’로 표현되는데, 이는 각각 말씀 하나님의 의와 뜻 그리고 계획인 말씀은 ‘로고스’라 하고, 사람을 향하여 선포되는 말씀을 ‘케리그마’라 하며,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할 때처럼 사람과 하나가 된 말씀, 사람의 심령에서 생명이 된 말씀을 ‘쉐마’라고 조금 구분하여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부가 되시는 건 우리 존재의 목적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른 아니 전문가의 장난감이 되기도 한 레고(LEGO)와 로고스는 어원이 같은데, 이는 ‘계획’, ‘의도’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로고스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 그 자체를 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로고스’라고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목적을 가지신 분이기에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 곧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아버지는 혼자서 되지 않는다. 아들이 있어야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버지의 의와 뜻이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가 아들이고, 이 아들이 나와야 아버지가 된다. 따라서 성부 하나님은 성자, 곧 예수 그리스도와 형제인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즉 내가 아들로 태어났을 때 나의 세계에 아버지인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이 존재하게 된다. 정확히는 인식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빛(인식’이 있으라’는 창세기 시작의 말씀과 당연히 관련이 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때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인데 내가 그의 아들이 될 때 성부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위(位)가 형성되고 인식하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이라는 모습을 별도로 가지신 게 아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내가 그의 아들이 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고, 성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나의 관계로 정의되고 인식되는 성부 하나님을 학문으로 정의하려고 하면 그게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성자 하나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려면 아들이 누구인지, 아들은 정체성이 어떤 지를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가 아들이니 하나님의 의와 뜻이 육신이 된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피조물이므로 창조주의 생각과 세계를 알 수가 없다. 핸드폰이 사람의 세계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사람 스스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는 건 고사하고 하나님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자기의 존재 목적도 스스로는 알 길이 없다. 이건 피조물의 절대적 한계로 사람이 스스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다. 그런데 이걸 알려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사람의 모습, 예수님은 그걸 보여주셨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9-12)
사람은 하나님의 의와 성품을 표현할 육신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피조물이기에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어두움>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의와 성품을 표현해야 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목적이 사람에게 회복되어 사람이 그 목적대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이다.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원리가 여기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걸 알려 주러 오신 하나님(의 본체)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우리에게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려 주시려고 오신 완전한 설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신 것이다. 육신으로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의와 뜻을 표현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전하고 설명하려 하셨기에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을 향한 뜻이 육신이 된 존재, 그게 바로 앞서 설명한 대로 아버지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난 <아들>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의와 뜻이 육신으로 현현(顯現)한 존재
한 마디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아버지로 인식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지에 대한 유일하고 완벽한 모델(완전한 하나님의 아들)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뜻이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된 아들의 실체, 그 분이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어떤 존재, 어떤 모습, 어떤 생명인지를 알게 된다. 이는 십자가 밑에 있던 백부장의 고백 “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고백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성자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깨닫게 하는 실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라는 말씀이 이 뜻이다. 하나님의 의와 뜻이 육신이 된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 곧 성자 하나님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고서 그가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걸 깨닫고 고백할 때 나는 성자 하나님을 인식하고 만난다. 따라서 이 깨달음은 하나님이 나에게 성부 하나님이 되심도 함께 알게 한다. 아들이 나왔으니 아버지를 아는 것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는 말씀이 이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육신을 가진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지를 깨닫게 되는 법이 바로 성자 하나님을 알게 되는 법인 동시에 하나님이 나에게 성부 하나님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까 나의 신앙이,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인식하는 지에 따라 하나님은 나에게 성부 하나님이자 성자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되고 믿게 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다른 모습, 다른 영향력으로 나타나시는 게 아니다. 한 하나님이 나의 신앙 고백에 따라 성부, 성자 하나님을 믿고 인식하며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 되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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