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기독교 신앙,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있어 가장 핵심이고 DNA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오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신념으로 지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을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감내하셨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건 진짜 오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건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 때문이다. 이게 본성인 이유는 성경 전반에 깔려 있지만, 핵심적인 것을 정리하면 생명이라는 단어와 거듭남 그리고 우리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거듭남이다. 거듭난다는 건 이전과 전혀 다른 생명으로 다시 난다는 의미다. 주체는 <생명>이다. 물건이나 건물은 업그레이드 혹은 리뉴얼이라고 하지 거듭난다고 하지 않는다. 거듭남은 주체가 생명인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 가장 쉽게 늑대가 양으로 다시 나는 것과 같다. 늑대가 양으로 다시 난다면 썩은 고기가 아니라 신선한 풀을 양식으로 삼고, 털 깎는 자 앞에 순수이 따라 가며, 도살자를 물거나 싸우지 않는다. 이게 거듭난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두고 거듭났다고 하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전의 생명과는 전혀 다른 생명이 되는 걸 말한다. 생명이 바뀐다는 건 육체의 모양이 바뀌는 걸 말하지 않는다. 늑대가 양의 탈을 쓴다고 거듭났다고 할 수 없듯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이전과 전혀 다른 가치관과 본성으로 살게 된다. 이전에는 인생을 자기 것으로 알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세상의 가치를 좇아 사는 걸 의로 여겼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면 하나님의 뜻이 본성인 사람이 되는 게 바로 거듭남, 곧 구원이다.
그러므로 이전에는 불상 앞에서 잘 살게 해 달라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사람이 비는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어 교회에서 기도하는 건 가치와 추구하는 것이 같으므로 거듭난 게 아니고 늑대가 양의 탈을 쓴 것과 같은 모양새다. 불상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세상에서 이기고 성공하는 게 영광이고 의로움이며 평안과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그거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다면 전혀 다른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건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것인 것,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십자가다. 즉 낮아지고 섬김으로 육신을 내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십자가고,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생명의 본성을 가지는 것, 이것이 거듭남이다. 예수님은 이걸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생명의 본성에 이끌려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신념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신념이 아니라 본성인 중요한 이유가 있다. 십자가가 본성이 아니라 신념으로 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신념의 빈약함을 알고 있다. 또한 개인별로 차이가 있어서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갈 수도 없고, 예수님을 본받을 수도 없다.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다시 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졌다는 의미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건 전능자의 아들이 되어 권세를 누리는 것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버지의 본성,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육신의 삶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생명의 이야기므로 본성에서 비롯될 때만 가능하다.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항상 기뻐하는 것과 같은 건 노력으로만 시도할 뿐이지 절대로 이를 수 없는 경지다. 하지만 본성은 다르다. 나와 분리할 수 없는 게 본성이다.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건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자아와 삶을 분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걸 말한다. 이 본성이 나타나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게 된다. 이 본성은 낮아지고 섬기고 겸손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육신의 수고와 목숨을 내어주는 본성이다. 이게 하나님께서 육신 가진 사람을 통해 표현하려 하신 하나님의 성품이다. 이 법이 바로 창조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 죄를 위하여 신념을 가지고 지신 게 아니다. 그리스도라는 본성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생명의 본성은 남을 위하여 나의 육신의 수고와 목숨을 내어주는 것이다. 수고를 내어 준다는 건 섬기고 사랑한다는 것이고, 목숨을 내어준다는 건 내 의를 죽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사랑은 의인이 죄인을 위하여 죄인이 되는 것이다. 섬기고 목숨을 내어주는 건 종의 운명이다. 그런 본성이 바로 그리스도의 본성이고,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대로 그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a Christ)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발을 씻기며, 하나님의 의를 가졌지만 나를 죄인이라고 심판하는 자를 위하여 수고하고 목숨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게 바로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진 형제로서 예수님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다. 거듭났다면 본성이 같으니 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과 달라서 그저 노력할 뿐”이라는 겸손을 가장한 구원받지 못한 실토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런 생명 안에 있어야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건 신념이 아니라 생명의 본성 때문이었다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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