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같은 말이지만 사람들이 가장 의심을 가지는 건 ‘믿음’이다. 다소 간의 말장난 같은 표현이기는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은 사실이라고 믿지만 그게 나에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건 오히려 의심한다. 구하면 무엇이든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성경 속 인물들이 그 믿음대로 되었다는 건 믿지만,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건 의심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게도 그런 일이 성취될 것이라는 걸 보이시려고 성경 속에 믿음의 역사를 기록하셨는데 사람은 역설적으로 그걸 믿지 않는다. 자기 믿음을 가장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믿음이 없다는 걸 자책하고 하나님께 믿음을 구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믿음이라고 주시지 않을 리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지 믿음을 주신 건 아니다. 믿음은 사람의 영역이지 아바타처럼 하나님을 무조건 믿고 사는 존재로 사람을 창조하신 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역사가 자기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충성스런 종으로 여기신다.
우리가 아는 믿음과 충성은 원어적으로 같은 어근을 사용한다. 믿음은 πίστις (헬라어:피스티스), 충성은 πιστός (헬라어:피스토스)라고 한다. 이건 방향성의 문제인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가진 마음이라면 충성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충성된 청지기의 삶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성립한다.
믿음은 사람의 영역이다. 사람이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성스러운 종으로 여기신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마음이 생기길 바란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마음에 어떤 확신을 주시거나 또 증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징조를 얻기 원한다. 그래서 기도하는 동안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이라도 하는 날에는 간구하는 일이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기도하는 동안 확신이 들지 않아 잡생각에 휩싸인다면 간구하는 내용의 성취보다 자기 믿음이 없다는 자책이 더 커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믿음이 없고 의심하는 자기 모습에 소침해지고, 어떤 때는 간구하는 바를 얻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다소 옳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행하기를 원하신다. 경제적인 문제를 간구하고 있다면 결핍의 공포와 염려를 걱정하지 말고 눈 앞에 있는 일들을 믿음으로 하나씩 해 나가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사람은 그 시간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 자기 결핍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그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사르밧 과부(엘리야)와 선지자 제자의 아내(엘리사)의 일처럼 결핍이 해결되는 상황이 일어나야만 하나님께서 자기 결핍을 해결해 주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간구한 것은 이루어진 것으로 믿으라고 하신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라는 찬송대로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히브리서 기자 역시 아직 증거가 없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간구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 때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런 말은 어쩌면 원론적인 말이다. 공부 열심히 하면 서울대에 간다는 말과 같다. 문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듯, 기도 역시 간구한 것을 믿는 믿음대로 사는 삶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믿는다고 다짐한다고 마음에 의심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사고가 있고 판단이 있고 인지하는 게 분명한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일, 그걸 자기가 결정할 수도 없다면 더더욱 그걸 믿는다는 건 아주 어렵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게 늘 어렵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우리가 확정하기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건 명확하기 때문에 이것이 마냥 의심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어쩌면 “믿습니다”라고 기도하기는 해도 의심하는 게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걸 가지고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할 수만은 없다. 사람은 경험과 습관이 중요한 존재이므로 그런 의심을 가지고 살았는데 정말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경험을 통해 믿음이 더 자란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의심이 든다는 그 자체로 우리를 정죄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성취될 때까지 사람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손에 없는 것을 믿는다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자손을 주실 것이라면 아들 없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나이가 75이었다. 그리고 이삭을 낳았을 때가 100살이다. 25년동안 자손을 주실 것이라는 걸 믿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는 게 마냥 하나님을 불신한 것이라고 일갈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알듯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불확실성 속에 응답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믿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결국 아들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켰다는 압축된 사실만으로 하나님을 믿으려 한다. 그러나 25년 동안 아브라함은 의심했고, 90에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하니 아내 사라는 웃기까지 했다. 25년이면 오늘날 수명으로 보면 철없던 시절을 빼고 나면 인생의 1/3 그 이상의 세월이다. 오늘 우리가 예를 들어 경제적 결핍의 문제를 의지한다고 했을 때 그게 하루 아침에 누가 대문 앞에 돈다발을 가져다 놓는 것 같은 기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님께 그런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충성스러운 사람인지가 문제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믿고 오늘 내 삶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도 모르게 많은 것이 성취된다. 어느 날 지난 날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것을 나에게 이루셨고, 또 함께 하셨으면 해결해 주셨는지 놀랄 것이다. 지난 날 그 당시에는 너무 급했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응답이 한없이 더딘 것 같았는데 돌아보면 너무나 적절하고 완벽한 시간에 그 일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돌아보면 아찔했던 순간들도 어떻게 넘겼나 싶을 정도로 은혜로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기시지 않고 말씀대로 나와 함께 하셨는데 나는 나의 기준, 나의 시간, 나의 방법, 나의 결과에 매몰되어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오늘 기도하면서 의심하고 자책하는 나의 믿음,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모두 내 기준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재앙이 아니라 평안으로 인도하셨음을 알게 된다.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고 함께하신 증거들이 넘친다.
아직 손에 쥐지 않은 결과를 믿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결과를 손에 쥐고도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미 손에 쥔 일은 믿음이 필요 없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그냥 사실 확인일 뿐이다. 통장에 입금된 내역을 보면서 그 돈이 입금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면 그건 농담이거나 우스개 소리지 믿음은 아니다. 그렇게 보면 아직 증거가 없을 때 그때가 믿음의 유효기간이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 그게 믿음이다.
이미 이루어진 건 믿을 필요가 없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믿는 것, 그게 믿음이다.
우리에게 그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충성스러운 종으로 여기시고 우리의 길을 예비하시고 동행하시며 도우신다. 이건 사람의 영역이고, 우리가 할 일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믿는 것, 그게 믿음이다. 두려워 말고 믿고 가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도 믿으며, 산을 옮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가는 것 그게 믿음이다. 그게 믿기지 않을 때는 지난 날을 돌아보자. 그럼 그 많은 시간들 하나님이 은혜로 이끄셨음을, 약속대로 함께 하셨다는 증거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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