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26. 2. 25. 08:11 Writer : 김홍덕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한다. 여기서 내용을 다룰 수는 없지만 대개의 사람은 자기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대상에게 기도한다. 급할 땐 거의 하나님을 찾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그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여기에 재밌는 경향이 하나 있는데, 어떤 이들의 기도는 더 잘 통한다는 통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돈봉투를 준비해서 옛날 제사장에게 가듯이 기도 받으러 다니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사람에 따라 기도의 효험이 다르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도의 효험을 위해, 하나님께서 더 잘들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목욕재개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는 자세나,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회를 드리듯 시간이나 장소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기도의 핵심은 아니다. 물론 이것들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한다든가, 그건 다 형식일 뿐 마음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대할 일도 아니다. 사람은 마음의 생각이 행동으로 표현되는 존재이므로 마음이 경건한만큼 자기가 생각하는 경건의 모양을 취하기 때문이다. 다만 겉모양과 행동이 경건하면 마음도 경건해 진다고 역방향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의미가 없다.

 

 

기도의 핵심은하나님의 관심

 

흔히들 말하듯이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내가 공통된 관심사, 같은 안목과 관점을 형성하는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된다. 그러니까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관심이다. 관심은 주체의 정체성에 종속되어 있다. 하나님의 관심은 정체성과 본성과 성품과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특히 창조한 목적이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다.

 

기도는 이 하나님의 관심과 관점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하나님은 자기 정체성과 사람을 향한 목적을 벗어난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하나님은 관심이 없는데 사람 혼자 기도랍시고 경건한 모양을 갖추고 새벽에 힘들게 기도하는 게 바로 중언부언하는 것이다. 상대는 관심 없는 소리를 하는 건 혼잣말이고 그걸 계속하는 게 중언부언이다.

 

상대가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이 중언부언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를 기도의 교과서로 삼는다. 그런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거룩하시기를,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이 땅 곧 사람인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간구한다. 그러니까 기도의 본질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하늘은 땅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주권을 가졌는데,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아니 아버지가 되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육신을 한정하는 말이 아니라, 내 존재의 정체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그래서 우리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사람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삶이 되는 아들이자 땅이 되기를 구하는 것, 이것이 기도의 본질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것에 관심이 있고, 이 주제로 대화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이 주제로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잡생각조차 기도의 재료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주기도문 외우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내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만 기도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우리 삶은 다양하고, 생각은 더 다양하고 복잡해서 우조도 사람의 머리 속에 다 들어가지 못할 정도다. 이런 우리가 삶의 모든 요소를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라고 담백하고 정갈하게 기도를 정리할 수는 없다. 이건 틀린 건 아니지만 현실적이지도 않고, 어쩌면 하나님께서도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이라는 문장만 뇌까리는 걸 원하시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삶의 다양한 요소들, 문제들, 소망하는 것들과 때론 욕심이라 질타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원하는 것들을 기도하게 되고,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자연스레 하나님께서 이걸 들으실까?’, ‘이게 이루어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기도에 효과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걸 의심이라고 일갈하겠지만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면 그건 일반의 사람이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는 누리 자신이 그렇게 정갈하지 않다는 걸 다 알고 있다. 다만 그걸 부정하게 여기니까 말하지 않거나, 말을 하면서도 자기를 의심하는 사람으로 정죄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는 건 일면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만드신 것이라고 충분히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동안 이런 저런 잡생각들이 든다는 걸 안다. 오히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기도할 때 잡생각이 들면 되나?’라고 반문한다. 기도 안 해봐서 그렇다. 때로 기도가 아니라 잡생각과 싸우는데 몰두해야 할 때도 많다. 기도를 해봤다면 알 수 있다. 물론 아주 간절한 기도를 할 때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런 잡생각들이 가득한 기도는 전혀 무용지물인가? 기도는 잡생각 없이 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잡생각이 많은 기도를 하고 나면 오히려 시험에 들 것 같은 느낌마저 들 것이다. 이건 기도 좀 해 본 사람은 다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도는 상당한 효과가 있다. 여러 잡생각 같은 생각들이 변증법처럼 하나님의 관점에서 벗어난 나의 생각들을 들춰내서 하나님의 생각에 수렴하도록 한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의 괴리를 드러나게 하고, 그 드러난 괴리를 회개하듯 하나님 앞에 시인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내가 순종하도록 한다. 우선은 생각을 그렇게 만들고, 그런 생각들이 쌓여서 행동과 삶을 정말로 순종하게 한다. 언급한 대로 사람은 마음의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존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전이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기도는 서두에 말한 것처럼 하나님과 같은 관점 안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건 하나님께서 까다롭게 조건을 붙인 게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라는 분명한 가이드가 있고, 이걸 벗어나면 기도가 되었던 자기 목숨을 바치든 아무런 의미나 효과가 없다.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산 물건이 목적을 벗어나면 큰 가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도의 주권과 거듭난 삶

 

우리는 기도를 나의 입장에서 조명하는 경향이 크다.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기대한다. 당연히 기도의 성과도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지만 집중한다. 하지만 기도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내가 원하는 걸 이루는 게 기도 같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나에게 이루어지는 게 기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시는 대로 순종하기를 구하면 정말로 기도가 이루어진다. 전혀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작은 일들, 사람들에게 거저 운이 좋아서, 일진이 좋아서 그렇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정말로 일어난다. 이걸 볼 수 있다면 기도가 얼마나 효과가 있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 일상 깊숙이 우리를 돌보시고 살피시는지 경험할 수 있다. 정말로 하나님을 인기척으로 느낄 만큼 가까이 내 삶에 동행하심을 알 수 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걸 구하는 게 아니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를 기준으로 기도를 조명하면 거의 이루어지는 게 없다. 다행히 하나님과 내가 원하는 게 같다면 어쩌다 이루어지는 일도 있겠지만, 그건 하나님의 목적이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이루기 위한 포석으로 기도가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보는 게 낫다. 하나님은 내 뜻을 이루어 주는 램프의 요정이나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역설적으로 생각한다면, 내가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무엇이든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의 본심이 여기에 있다. 그럼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하나님과 생각이 같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게 참 단순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육신이 되고, 내 육신이 그렇게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면 나의 육신과 삶은 하나님과 같은 본성과 안목을 가지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게 곧 하나님의 뜻이 된다.

 

거듭난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같은 관심을 가진다.

 

더 놀랄 일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나의 기도는 다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는 중요하다. 마치 계측기의 검교정을 하듯이 하나님과 조용히 나의 생각과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자 생명인 그리스도의 본성의 가치를 비교하는 시간이 기도다. 그렇게 내가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맞추어 가는 것 그것이 하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과 다른 나의 생각을 발견하고 돌이키는 게 손발을 씻는 회개다. 이런 기도는 정말로 능력이 있다. 사람들이 그냥 운으로 치부하는 일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기적들을 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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