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죄 사함

Category : 김집사의 뜰/십자가의 삶 Date : 2024. 3. 1. 12:14 Writer : 김홍덕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알듯이 사람,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서다. 이건 진리다. 다만 이것을 진리로 믿느냐 아니냐는 사람의 선택이다. 성경은 진리로 믿는다면 죄가 사하여질 것이라 약속한다. 성경을 믿는다면 그걸로 문제는 해결된다. 이와 같은 개론은 여기까지로 정리하고 몇 가지 관점을 이야기 해 보자.

 

우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 포인트는 죽은 자도 살리신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다. 이 의문에 관해 가장 보편적인 의견은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참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신념과 인내와 노력으로 그 엄청난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셨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물론이고 성경의 모든 말씀은 사람의 노력이나 신념으로 하나님의 의와 뜻을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건 신념이나 인내가 아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에도 십자가를 지신 건 신념이나 인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본성 때문

 

예수님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생명이다. 하나님이 살았다고 여기는 생명이다. 생명은 본성이 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건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의 본성은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의와 뜻이다. 말은 의와 뜻의 표현이다. 이 본성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본성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건,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정체 곧 그리스도라는 존재의 정체성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한다.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그리스도를 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일게 된다는 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뜻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린 모습을 보고 십자가 밑에 있던 백부장이 "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다. 백부장은 육신으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을 알게 했다. 이게 그리스도의 본성이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하나님을 알게 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존재 정체성을 깨닫고 회복하는 게 죄 사함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람의 죄를 사하는 건 이 법에 따른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명제를 아는 것과 같은 게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안다는 체휼이다. 물에서 살려면 수영할 줄 알아야 한다는 <안다>가 아니다. 물에서 헤엄치고 수영할 수 있게 된 상태를 말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안다는 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와 그 하나님의 말씀(의와 뜻)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안다고 말한다.

 

죄와 죄사함

이같이 하나님을 안다는 건 더 깊은 의미들로 이어진다. 가장 결정적인 건 예수님께서 '나도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의 본성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과 예수님과 내가 그렇게 같은 본성을 가진 존재라는 걸 아는 것을 포함한다. 예수님과 내가 같은 본성을 가졌다는 건 생명의 유전자가 같다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근거고, 예수님과 우리가 형제요 하나가 되었다는 말씀의 본질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를 아울러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의 죄는 행동에 관한 게 아니다. 거짓말하고 화내고 도둑질하는 것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사한 죄가 아니다. 예수님이 그같은 행위의 죄를 사하셨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헛되다. 구원받았다는 사람도 여전히 화를 내고 짜증내며 욕을 하고 심지어 사회 규범이 죄로 여기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예수님이 사한 모든 인류는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으니, 예수님의 십자가는 헛되다. 이게 보인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한 죄는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게 올바른 말씀 묵상이다.

 

죄는 하나님의 의를 표현해야 할 사람의 자리를 떠나 자기 옳음을 추구하는 사람의 상태

 

성경이 말하는 죄는 존재의 이탈이다.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아닌 다른 것을 자기 인생의 의미와 목표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게 성경이 말하는 죄다. 예수님께서 사하신 인류의 죄는 행위로 범한 죄가 아니라 이 죄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이 자기 정체성을 떠난 죄에서 구원한다. 앞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란 걸 알게 된다면 자기 의로움으로 살아온 자기 모습을 돌이키게 된다. 무엇이 진리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건 이전의 삶이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과 고백 그리고 뉘우침을 수반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죄 사함에 대해 깊이 묵상해야 한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 우리가 사회적으로 죄라고 말하는 행동으로 범하는 죄를 사하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참고 참는 인내와 신념으로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기에 그리스도가 가진 본능에 이끌려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죄 사함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 아들은 어떤 존재인지, 구원받은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신 사건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대로 사는 사람의 모습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며 사람은 저 모습이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이란 걸 깨달을 때 하나님이 나를 만든 목적에서 내가 벗어나서 살았다는 걸 알게 되고, 시인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인생의 정체성을 자기 정체성으로 순종하므로 자리를 떠난 죄가 사해지고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각양의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며 "이것이 옳은 것이며, 이것이 그리스도다"고 외치는 그릇된 외침 앞에 나를 내주며, 그들의 주장에 따라 심판도 받고, 그들의 요구대로 육신의 수고를 내어 주고 심지어 육신의 목숨도 내어 줄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진 존재라는 걸 보이셨다.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이 있음에도 그 본성 때문에 매 맞고, 끌려가고 못 박는데도 순종하는 모습이 신념이나 인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기 때문이란 걸 보이셨다.

 

그리스도는 자기 옳음을 주장하는 사람의 의로움에 육신을 내주는 본성을 가진 사람

 

그러므로 사람은 그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사는 생명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걸 발견하고 이전까지 내가 옳다는 대로 살고 내가 옳다는 생각대로 사람을 움직이고 명령하고 따르기를 바라면서 소리치고 윽박지르던 모습을 돌이켜 오히려 내가 수고하는 존재가 되는 게 구원이고 죄 사함이다. 이 변화는 오직 생명이 바뀜으로만 일어나는 것이기에 거듭남이라고 한다.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신념이나 인내가 아니듯, 그리스도로 사는 것 역시 노력이나 신념이 아니기에 생명이 바뀌는 거듭남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라는 본성이 십자가로 이끌었듯, 그리스도로 거듭나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사는 게 구원의 삶이다. 괜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신 게 아니다.

 

십자가와 죄와 죄 사함과 회개와 구원에 관한 바른 묵상

우리는 구원과 죄 사함을 대충 생각하면 안 된다. 구원을 이야기할 때는 어디서 어디로 구원을 받았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죄와 죄 사함을 이야기할 때는 죄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한다. 이게 핵심인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죄는 사람들이 말하는 죄, 구원은 무작정 상황이 좋아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죄가 사람들이 말하는 죄라면 교회 다니는 사람, 소위 구원받았다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사회가 말하는 죄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여전히 죄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런 효용이 없는 상태라는 걸 주목해야 한다. 또한 구원이 죽어서 천국에 가면 금 면류관 쓴다는 맥락처럼 육신의 삶과 형편이 나아지고 기대하는 바가 쉽게 이루어지는 집합에 속한 것으로 여기면 안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의 성공이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의 향상이란 이야긴데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하라고 하셨다.

 

십자가와 죄와 죄 사함과 회개와 구원에 관한 "과연 그런가?" 하는 묵상이 필요하다.

 

이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십자가, , 죄 사함, 구원은 성경의 사람에게 베푸신 은혜의 핵심임에도 여러 모순적 상황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건 말 그대로 <방 안의 코끼리>. 심각한 모순과 오류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인 셈이다. 그나마 제시된 해결책이 "우리는 예수님과 다르니 예수님처럼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도인데 그건 육신의 행위로 의로워지겠다는 소리니 행위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성경에 역시 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자임에도 십자가를 지신 건 그리스도시기에, 그리스도의 본성에 이끌렸기 때문이란 것과, 그 본성에 이끌려 십자가를 지신 모습이 우리가 되어야 할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란 것을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깨닫는 게 바로 죄 사함과 구원이란 걸 묵상해야 한다. 따라서 죄는 우리가 예수님이 보여주신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사는 것임을 알고, 자기 의로움을 좇아 살았음을 뉘우치는 회개를 거쳐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 아들로 거듭나는 게 구원임을 상고해야 한다. 결국 구원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정체성이 회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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