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2장)
다윗의 범죄에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한다. 다윗을 만난 나단 선지자는 비유로 이야기한다. <한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는데 부자는 소와 양이 심히 많고 가난한 자는 새끼 암양 하나 뿐인데 이 가난한 자에게 그 새끼 암양은 마치 딸과 같아서 자식과 함께 자라고 함께 먹고 함께 잘 정도로 귀한 귀한 양이다. 그런데 부자가 (율법대로) 자기에게 온 행인을 대접하기 위해 자기 자기 양과 소를 두고 그 가난한 자의 새끼 암양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다윗은 크게 노하여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반드시 죽을 자라”라고 하자 나단 선지자가 “당신이 바로 그 자”라고 하나님의 책망을 전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다윗의 처들이 백주 대낮에 치욕을 당할 것이며, 간음으로 낳은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그 아이가 나자마자 앓게 되고 결국 7일만에 죽는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린 벌은 다 이루어진다. 그의 아들 암논이 이복 자매인 다말을 강간하고,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이 결국 암몬을 죽인다. 압살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고 반란을 피해 궁을 떠난 다윗이 남겨둔 후궁 10명, 그러니까 아버지의 후궁6을 궁궐 옥상에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범하는 엄청난 일을 일으킨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전한 처벌의 예언들이 다 이루어진다. 언뜻 간음하여 얻은 아들 하나 죽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전에 다윗에게 축복하실 때 언약대로 사울을 버리듯이 다윗을 버리시는 않았다.
다윗이 죄를 지었고, 하나님은 벌하신 단순한 구조의 사건이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의 비유를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 사건을 단순한 간음으로만 보지 않으시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위해 모든 것을 가진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는 단 하나를 가진 우리야의 모든 것을 빼앗은 사건으로 보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쉽게 이 비유를 다시 비유하면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많은 것을 가진 목사가 찬양 사역 하나를 충실하게 하는 사람의 사역을 빼앗은 것이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취한 것은 목사가 찬양 인도자의 찬양 사역을 빼앗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우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암양에 비유된다. 다윗으로 비유된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심히 많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소와 양이 성경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보면 좋다. 소와 양은 우리가 반사적으로 인지하듯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사용되는 짐승이고, 또 하나님께서 먹어도 되는 고기로 정해주신 짐승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기르는 우리 믿는 사람을 상징한다. 그 중에서 암양이라고 특정했다는 건 여자와 마찬가지로 ‘형식’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제사의 규례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제사장이나 족장이 아닌 일반인이 행위로 범한 죄를 속죄하는 제사인 속죄제에는 번제와 달리 암양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 사람의 경우 여자, 제물의 경우 암컷은 행위와 형식처럼 드러난 것을 대신하거나 의미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행함, 이를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재능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너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내가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삼하 12:8)이란 말씀이다. 거듭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의 본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육신이 재능이나 능력, 세상의 어떤 것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더 주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필요한 건 하나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재능과 재화와 같은 육신의 것들이다. 이건 불의한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을 얻는 것과 완전히 구분된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취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섬기는 달란트나 직분이나 수고를 빼앗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의외로 신앙 세계 안에서 이런 일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좀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징계가 의외로 강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밧세바가 낳은 첫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엄청난 벌인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에는 이’라는 방식으로 다윗의 후궁들이 백주 대낮에 아들에게 치욕을 당하는 벌을 받는다.
우리는 신앙 세계 안에서 서로가 가진 하나님을 섬기는 표현과 양식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각 사람에게 있는 여자적 측면, 곧 형식의 다양함은 하나님의 다양성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성품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이므로 우리 각 사람이 가진 하나님을 섬기는 다양함은 하나님 성품의 다양함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고 그걸 빼앗으면 안 된다. 더욱이 다윗처럼 많이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일은 사실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 놀랍게도 신앙이 자라면 사람들은 쉽게 같은 일이라도 더 나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교회에서는 요리를 잘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김치찌개도 목사님이 하자는 대로 하면 더 맛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좋지 않은 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목사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라는 식이다. (굳이 목사가 아니어도 이런 경우는 많다) 이런 행위들이 바로 다윗의 밧세바를 취한 것과 같은 일이다.
교회와 성도들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는 머리고 성도들은 몸의 지체와 같다고 했다. 그리고 각 지체는 고유한 기능이 있다. 공동체 안에 다양한 사람이 그 재능과 특별한 육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게 하나님 나라의 고유 특성이다. 다양함이 무궁하신 하나님께서 그 각양의 성품을 각 사람을 통해 표현하시는 게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이다.
그러므로 신앙이 더 나은 사람이 육신의 일도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이나, 다윗처럼 적은 재능 혹은 조금은 부족한 재능으로 하나님 섬기는 암양과 같은 재능과 형식을 신앙이 더 좋다는 이유로 빼앗으면 의외로 하나님의 큰 징계를 받는다. 신앙이 좋다면, 정말로 낮아지는 십자가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소와 양이 심히 많은 사람이기에 자기 가진 것으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면 된다. 이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축복하신 이유다. 다윗은 이 자리를 벗어났고, 그로 인해 엄청난 징계를 받는다. 우리는 이 일의 교훈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가끔씩이라도 내 신앙이 좋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평교인의 성경 보기 > 사무엘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무엘 하) 18. 간음할 법한 자리에 있었던 다윗 (0) | 2026.01.24 |
|---|---|
| (사무엘 하) 17. 거듭난 삶의 죄와 환란 (0) | 2026.01.14 |
| (사무엘 하) 16. 므비보셋을 통해 보는 옛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 (0) | 2026.01.07 |
| (사무엘 하) 14. 다윗의 기도, 온전한 기도 (0) | 2026.01.03 |
| (사무엘 하) 13. 하나님의 축복 속 존귀함 (0) | 2026.01.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