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장, 막 11장, 눅 19장, 요 2장)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시니 성전에서 매매가 성행했다. 팔고 사는 것은 비둘기와 같은 제사의 제물이었다. 유월절의 제물을 바쳐야 하는데 멀리 오는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 미리 준비하지 못한 번제의 제물을 성전에서 사서 유월절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은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고 장사를 하지 못하게 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마 21:13)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 2:16)


이 말씀은 단순하게 성전을 시장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인데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먼저는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고, 아울러 장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사람들은 기도를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능동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어디까지나 ‘하늘의 뜻이 땅 곧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100% 수동적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아하! 그렇구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기도는 제사와 같고, 제사는 자신을 드리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삶을 주관하시도록 하나님의 의가 본성이 되는 것에 자신을 드린 사람이어야 기도와 믿음이 수동적인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도와 제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한 뜻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의 본질적 의미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다. 그곳에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자기 심령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는 것에 순종하겠다는 고백이다. 성전이라는 곳은 하나님이 오셔서 거하는 곳이기에 사람이란 존재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에 사람이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 거하여 그 사람의 삶이, 육신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제사이자 우리 몸이 성전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사의 본질, 그리고 우리 육신의 존재 목적이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의 존재성은 Give & Take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장사의 가장 기본적인 매커니즘이 Give & Take다.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께 어떤 것을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심판하거나 우리가 필요한 것을 더 채워서 부유하게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사람의 행위를 관찰하고 심판하고 상주시는 일이나 재미를 위해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그 반대급부로 육신이 살아가는 동안의 필요를 얻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의 필요는 천부께서 이미 다 아시고 준비해 놓으셨다고 하셨다. 그것이면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시 23:1) 장사 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 성전도 하나님의 의를 담는 성전인 사람 그 자체도 장사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장사를 하려고 한다. 그게 신앙이라 믿는다. 하나님의 반응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그 규칙성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순서로 예배드릴지, 어떤 분위기로 예배드릴지 연구한다.(신학 내 예배학과 같이) 어떤 때는 어떻게 해야만 한다(have to)고 말한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반응이 기대와 다를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모든 신앙의 행태가 바로 장사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성전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육신의 정욕에 쓰려고 평안과 성공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구하는 것을 주실 마음이 들도록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드리려는 모든 것을 말한다. 비단 제물이나 재물이 아니어도 성경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자녀들 건강하고 성공하며 사업이 잘 되고 심지어 죽어서 천국에 가면 그것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얻을 것이라는 범주의 모든 말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사다. 


그리고 성전에서 하나님과 거래하여 얻고자 하는 것을 주시고 해결하는 분이 바로 그들의 메시아, 그들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을 구하는 모든 신앙이 믿는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그리스도다. 바로 장사하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성전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인 나에게 너희 육신의 정욕에 쓸 것을 구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런 것을 해결하는 도깨비 방망이나 램프의 요정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