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세우신 뜻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게 되면 흑암 속에 있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왜 사는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인생의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를 인지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천지창조의 시작에 “빛이 있으라”하심이 그것이다. 빛은 곧 인식이다. 컴퓨터에 입문하면 컴맹에서 벗어나고 컴퓨터 세계에 대하여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태초다. 그 태초는 물리적 세상의 창조보다 한 개인이 새로운 세계를 인지하는 것이 말씀하시고자 하신 본질이다.


그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는 모든 인생에게 예비된 것이다. 그래서 ‘구원받을 후사’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2장 5절에서는 ‘장차 오는 세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확정이 아닌 장래의 예비된 것으로 말씀하심에 대하여는 앞선 ‘구원을 후사들’에서 간략히 설명하였다.) 이것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리로 인도 받도록 지음을 받았으므로 이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순종하고 받는 사람에게는 육신으로 이 세상을 살면서 그 살아가는 세상과 다른 또 다른 세상이 자신에게 임하게 된다. (그것이 자신의 일임으로 부인할 수 없게 되면 거듭난 생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천국이 이미 임하였다’하심도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히브리서는 바로 그 세상에 대하여 말씀을 이어가고 있다. 그 세상은 천사에게 복종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에게 복종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천사들에게 복종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가 표현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평안과 안녕을 바라는 사람들이 천사들에게 자기 육신의 문제를 의탁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심이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장차 다가올 세상은 육신의 문제 해결이 신앙의 본질이 되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하나님의 아들인 사람에게 복종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잠시 천사보다 못하였지만 예수를 보고 나면 만물이 왜 사람에게 복종하게 되어 있는지를 알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를 본다는 것,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가 왜 오셨는지를 인지하므로 열리는 새로운 세계는 천사에게 복종하는 세계가 아니라 만물이 예수를 보고 새 세계가 열린 사람에게 복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것에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세계는 육신의 성공과 평안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여기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에게 복종하고 의지하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서 돈 달라, 밥 달라, 배우자 달라 기도하는 것이 바로 천사에게 복종하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육신의 문제 해결을 자기보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대하는 능력이 뛰어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신앙 위에 서서 자신이 바랬던 대로 육신의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된 하나님께 영광된 일이라고 믿는 그 신앙이 바로 천사에게 복종하는 신앙인 것이다. 


그런 신앙은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지 않은 신앙이라는 의미다. 장차 오는 세상이 오지 않은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날에 자신이 예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가르치는 자나 따르는 자나 알지도 못하면서 행함으로 성경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를 가지고 하나님께 가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으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괜히 성전을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렇게 자기 공로로 자기 육신의 평안과 성공을 거래하는 곳이 오늘날의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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