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의 본질은 죄는 사람들이 짓고 벌은 예수님께서 받으시면서 겪게 되는 고난이 아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육신으로 오셔서 같은 육신을 가진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육신으로 어떻게 나타내는지를 보이신 것이다. 육신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보이는 그 모든 삶이 바로 고난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은 육신의 안목으로 보면 육신이 일생을 살며 소비되거나, 예수님과 사도들과 순교자들과 같이 급격하게 소비되는 것이 고통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고난으로 여기는 것이지만,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과 육신의 성격으로 보면 오히려 그렇게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육신이 쇠약해지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육신을 보전하는 것을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의로 거듭나는 것뿐이다. 따라서 주를 인하여 죽임을 당하고 육신의 삶이 쇠약해지고, 다른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 앞에 육신의 수고를 내어주는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거나 아직 장성하지 않은 사람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거듭남’은 광범위한 것이다. 즉 성경말씀 전반에 있어 근간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기에 성경이 생명으로 여기는 생명으로 거듭났다면 성경의 모든 말씀은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성령이 오셔서 모든 것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으니 성령으로 잉태되어 생명이 되었다면 당연히 성경의 모든 말씀아 자신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거짓이거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생명이 아닌 것 그 두가지 중의 하나일 뿐이다.


거듭남이 근간이 되는 것은 당연히 생명에 관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아버지, 형제와 같은 말씀들도 모두 생명에 관한 말씀이다. 생명이라는 것에는 그 생명의 본성이 있다. 같은 생명을 가졌다면 같은 본성에 의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행동들을 모으면 성경이 된다. 성경에 무엇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 말씀들은 결국 그런 행동을 하는 생명이 되라는 말씀이다. 거듭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규범들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본성에서 동일한 행위를 보이는 존재들이 서로 형제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형제로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보이신 삶과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거듭난 존재들에 말씀이다. 예수님과 본성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본성이 같으면 그 삶의 모양이 달라 보여도 결국 같은 본성에 의하여 살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남자였지만 육신으로 여자가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의 가치 앞에서 죄인이 되어 육신의 수고를 내어 주심과 같이 자기 삶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이다. 그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그 행위의 본성, 근원은 같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을 형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본성은 예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우리와 동일한 육신으로 오셔서 보이심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예수님과 같은 존재라고 순종이 된 사람들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거듭난 생명이 되어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가 되었다는 것은 범사에 동일한 본성을 보이는 사람들인 것이다. 히브리서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다고 말씀하심 또한 같은 생명이 같은 본성으로 살아감을 인함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 역시 자신의 고난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이기에 반드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에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함을 입은 자가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형제가 된다는 것은 또한 아버지가 같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같은 고난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만이 하나님 앞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겸손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예수님은 예수님이니까 그럴 수 있지만 우리는 사람이니 그럴 수 없고 단지 노력할 뿐이라는 신앙은 예수님과 형제도 아니고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인하여 거룩하게 되는 사람도 아닌 것이다. 당연히 예수님의 고난으로 온전케 되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자신은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일 뿐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예수님과 생명이 다르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예수님과 형제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과 형제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졌다는 것이기에 예수님의 고난이 자신의 고난인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고난이라 말하는 것이 예수님과 동일한 생명 안에서 보면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것은 영광스러운 것임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 같이, 자신의 삶도 말씀 그 자체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굳이 그렇게 믿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생명으로 난 사람은 오히려 부인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서 거듭난 생명이다.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형제인 것이다. 아버지가 같고 생명의 본성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그런 사람들이 모일 때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나라, 곧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까지 생명의 본성에서, 거듭남에서 다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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