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1-11) 향유옥합 - 4

Category : 미디어 말씀 파일/마가복음 Date : 2019.10.06 05:00 Writer : 김홍덕

깨어진 옥합 그리고 향기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린 것에 대하여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애도하는 뜻으로 그랬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 죽을 사람을 위해서 자기 전 재산을 한 순간의 의식으로 드리는 감동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종말로 귀결되는 그런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을 인하여 하나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가 드러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난다는 것은 이전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 속에 있던, 육신이 된 그 말씀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보는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는 의미이다.


향유옥합이라는 것은 작은 질그릇, 곧 흙으로 만든 작은 병 안에 귀하고 귀한 향유가 들어 있는 것을 말한다. 그 향유옥합이 깨지면 당연히 그 안에 있는 것이 쏟아질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향유 곧 향수와 같이 향기를 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다시 주워 담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향기가 진동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가두어지지 않고, 어떤 곳이라도 향기는  전해질 것이다. 그것이 향유요 향기다. 그것이 질그릇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또 사람을 질그릇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늘 말씀하시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사람은 무엇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은 형식이고 그 안에 무엇이 담겨짐으로 그 정체성이 완성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향유옥합 사건은 바로 사람의 이러한 정체성에 바탕을 둔 사건이다.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육신이 옥합이 깨어지듯 십자가에 달리시면 옥합 속에 있는 향기가 퍼지듯 그리스도라는 정체성, 하나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드러날 것임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와 동일한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육신이 옥합이 깨어지듯 깨어지니 하나님 아들, 하나님의 말씀(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니)이 드러난 것과 같이 우리도 우리의 육신이 세상의 가치 앞에서 깨어지듯 낮아지므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육신이 깨어지듯 낮아진다는 것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여 높게 만드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시각과 안목 앞에서 낮아지는 것이 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육신을 가진 이유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이유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창에 찔리시니 물과 피가 나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우리를 구원했다고 명제(命題)화 하였지만 왜 피가 우리를 하는지는 모른다. 단지 <죄는 우리가, 벌은 예수님이>라는 논리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물은 말씀을 상징하고, 피는 생명을 의미한다. 이것은 해석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창으로 찔렀더니 물과 피가 나왔다는 것은 말씀과 생명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옥합이 깨어지니 향기가 넘쳐나는 것 같이.


예수님의 몸에서 물과 피가 나왔다는 것이 말씀과 생명이 드러났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니 질그릇을 깨니 그 본질인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났고, 또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시는 정체성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과 생명은 바로 십자가와 일치하는 것이다. 육신을 세상의 가치 앞에 죄인이 되어 내어주니 말씀과 생명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 앞에 육신으로 종이 되어 섬기는 자가 되니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가지신 의(말씀, LOGOS-계획)와 생명으로 여기시는 것은 세상의 가치 앞에 육신을 깨뜨리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사람을 지으신 뜻이자 우리 인생의 존재 목적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심령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이고, 그 본성을 인하여 자신을 내어 줄 수밖에 없는 길로 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아들은 아버지의 뜻이 형식으로 나타난 존재이다.)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이 향유옥합 사건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의 표현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놀라운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배경에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괴리를 극복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뜻도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곧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며, 돌로 떡을 만들고, 세상의 가치로 이긴 자, 성공한 자가 되는 것이라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생각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본질이 무엇이지를 말씀하시는 사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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