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를 시작하며…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욥기 Date : 2019. 1. 27. 22:57 Writer : 김홍덕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꼭 써 보고 싶었던 성경 중의 하나가 욥기입니다. 욥기에 대하여 전문적인 견해가 있거나, 구구절절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욥기는 우리가 성경을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욥기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잘 지켜 행하면(doing) 복을 주신다고 여기는 생각에 대한 반론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삶을 곤고하고 고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이겨내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셨던 것과 같이 고난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도와는 달리 다들 욥과 같이 복을 누리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고난이라 여기는 자기 삶을 잘 견디고, 그 곤고한 중에 성경에 명하신 것들을 잘 지켜 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목적은 그 끝에 있을 축복입니다.


또한 사람들, 특히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신앙이 복음이며, 자신의 신앙은 행함으로 의로워지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근거는 자신들이 지키려는 성경이 주로 신약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주신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행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욥기를 보는 관점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곤고한 인생, 기도하고 성경보고 전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욥과 같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보려는 이 욥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욥과 졸지에 엄청난 고난에 빠진 욥을 위로하러 온 세 친구(소발, 빌닷, 엘리바스)의 변론이 전체의 60%정도 됩니다. 그 변론의 주제는 사실 간단합니다. 세 친구들은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욥이 하나님께 뭔가 죄(doing)를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욥은 자신은 하나님께서는 행위로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자신은 행위로 죄를 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평행선을 긋다가 32장에서 난데없이 엘리후라는 젊은 사람이 나타나서 욥을 책망하고, 욥을 바르게 책망하지 못하는 세 친구를 책망하기 시작하자 다들 말도 못하고 듣기만 하다가 이후에 38장부터는 아예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시고 하나님의 질문 공세를 받은 욥이 회개하므로 끝나는 성경이 바로 욥기입니다.


그 사이, 아니 시작에 욥이 고난을 받게 되는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 또한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습니다.(욥기 초반에 별도로 다룰 예정) 이 사탄의 등장은 단순하게 보면 욥기의 전개에 사용된 에피소드 같지만 성경은 그렇게 지면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는 모습에서 사람이 인지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욥기 전반에 흐르는 주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욥기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고난과 복락, 그 중에서 특히 고난이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욥의 세 친구들과 같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못 섬기고, 행하라고 한 것을 행하지 않아서 받는 벌이라고 여겨지고, 욥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이지만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하나님은 모든 것, 심지어 사탄까지도 사람이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경영하신다는 것을 엘리후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또 나중에는 직접 욥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실제로 엘리후의 변론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때에도 늘 사람을 위하신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욥이 자신이 의로움에도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셨다는 것에 대한 반론과 책망으로서 하는 말입니다. 욥의 말에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고난도 복도 맘대로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뭐랄까 고의로 고난을 주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는데, 엘리후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람을 위하여 하신다고 변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욥기는 단순하게 곤고한 인생 중에서 어렵더라도 성경말씀을 잘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원하고 즐기며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 복을 주실 것이라는 기복적인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경영의 주인이시며, 그 경영하심이 자기 주권을 자기 맘대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지도록 하시기 위하여 경영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모든 피조물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제 얼마간 이 욥기를 다루어가겠습니다. 그렇다고 구구절절 설명할 것은 아닙니다. 방향은 후반에 나오는 엘리후의 교훈과 하나님의 질문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일들에 대한 경영 철학과 같은 하나님의 의를 새겨보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입니다. (참고로 욥기는 다소간 포스트마다 간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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