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장) 욥의 의에 대한 사탄의 관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욥기 Date : 2019. 1. 28. 17:06 Writer : 김홍덕

욥기의 시작에서는 욥이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 자녀들이 혹시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하여 번제를 드릴 정도로 하나님에 대하여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욥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주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욥을 자랑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자랑에 대하여 사탄은 ‘욥이 괜히 의로운 것이 아니라’며 욥이 의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욥의 집과 모든 소유에 대하여 울타리가 되어 주시기 때문이며, 또 하나님께서 늘 복을 주시기 때문이라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러면서 사탄은 욥도 그러한 것이 없어지면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기는 이렇게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는 말고 욥의 모든 것을 맘대로 해 보라고 맡기십니다. 그러자 여호와 앞에서 물러난 사탄은 지체 없이 욥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아 버립니다. 재산은 모두 이방인들에게 빼앗기고 자녀들은 집이 무너져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욥의 고난과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탄이 보는 욥이 의로운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바라는 것들이 욥이 가진 것이자, 사탄이 욥이 의로운 이유라고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탄이 욥이 하나님께 받은 복을 인하여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하듯, 사람들은 욥이 가진 것을 어떻게 누리거나 취하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탄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라고 하면 신앙의 세계에서는 아주 극단의 끝에 있는 존재 또 가치관이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기로 하나님께 약정했는데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사소하게 여기는 범죄 혹은 연약함, 아니면 거짓말과 같이 서로 이해 가능한 실수에 가까운 죄 정도만 짓고 사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이 사탄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급진적인 생각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심지어 그렇게 사소한 것들은 가볍게 여기는 그 생각들도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단 하나를 지키지 못하면 모든 것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분명히 성경에서는 엄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단지 사람들 자기 맘대로 스스로 ‘그 정도까지야’, 혹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나?’로 하나님의 법을 자기 맘대로 합리화한 것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이 가진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성경이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에 대하여는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욥기 1장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나누는 대화 속에 욥이 가진 부유함, 우리 모든 사람들이 가졌으면 하는 그 부유함과 풍족함에 대하여 하나님과 사탄이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오늘 욥기를 읽고 있는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솔직하게 인정하고서 이 욥기를 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이 가진 모든 것을 맘대로 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사탄이 해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욥을 의롭다고 하시는 이유 역시 욥이 그러한 것을 가졌기 때문에 욥을 의인으로 여기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늘 사람들에게 ‘사람의 행위를 보시지 않는다.’,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중심을 보신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과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생각이 하나님과 다르다는 표면적 해석도 가능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사탄이 보듯이 사람의 육신이 가진 부유함과 복락을 의로 여기는 생각을 가졌다면 사탄과 같은 생각, 더 나아가서 사탄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라고 하니 공포 영화 속에서 사람을 처참히 죽이는 그런 존재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서 하나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사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욥이 가진 것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욥기를 읽으면서 또 들으면서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교회 혹은 기도원이나 집에서 기도할 때에 욥이 가지고 있었던 자녀와 재산과 풍족한 삶을 구하지 않았는지, 또 그러한 풍족함이 있어야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하나님께 그것을 구하지는 않았는지, 또 살다가 그런 것을 얻게 되었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 여기지는 않았는지(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롭다고 생각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 돌아보고 또 솔직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욥기를 제대로 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교회들이 교회를 화려하게 건축하는 것도 욥의 풍족함을 바라보는 사탄과 궤를 같이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회를 크고 아름답고 좋은 시설로 건축해 두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좋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교회 건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생각이 그렇습니다. 또한 개인으로도 세상에서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는 어떤 부분에서 이긴 자가 되었을 때의 기쁨과 세상 가치 안에서의 영광을 영광으로 여긴다면 그 또한 욥기 1장에 나오는 사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탄은 욥과 관련하여 하나님 앞에서만 정체를 드러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금식을 마치셨을 때에도 찾아가서 그 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붙입니다. 욥이 의로운 것은 부유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듯,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먹는 문제와 육신의 한계 같은 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 세상의 경쟁에서 이겨낸 모든 영광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태연하게 자신들이 그 시험을 이겼다고 하면서 교회를 크고 화려하게 건축해야 한다만 생각하고, 세상에서의 성공이 하나님께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말에 연예인들이 자기들끼리 상을 주고, 그 상을 받은 사람들 중에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경쟁에서 이긴 것을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생각하실 것이라는 오만함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소리인데 말입니다.


다시 욥기로 돌아와서 보면 이 욥기는 결국 사탄이 욥이 의로울 수 있었다고 여기는 그 육신의 부유함을 매개로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육신의 부유함이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는 이유라고 말하는 사탄이나, 육신의 부유함이 사라진 것은 육신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 회개하라는 세 친구나 하나님 의의 척도는 육신이 어떤 상황이고, 세상의 가치로 볼 때 육신의 형편이 어떠한지로 나타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오늘 대부분의 신앙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욥기가 성경으로 남아 있고, 그런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안목이 사탄과 같은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가지신 뜻을 욥기를 통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욥기를 읽고 들으면서 자신의 가치관이 사탄과 같았다는 것이 발견되고 고백이 되면서 시작을 하면 끝에 있는 복이 자신의 것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욥이 사해 주어야만 벌을 면할 수 있었던 세 친구 이상의 존재가 되지는 못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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