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5:1-15) 그리스도인의 자유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갈라디아서 Date : 2021. 8. 11. 13:18 Writer : 김홍덕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곧 자유를 얻는 것이라 성경은 말씀한다. 자유를 얻었다는 것은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자유를 얻기 전에는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는 것과 이제는 무엇을 할 수 있기에 자유를 얻었다고 하는지, 이 두 가지다. 이 두 가지를 고찰하는 것은 자유의 의미와 목적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생각지 않는다면 방종이다. 자유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고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설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자유의 가치로 볼 때 방종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모른다면 자유를 얻었다고 할 수 없다.

 

 

먼저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속하기 전에는 왜 자유롭지 못했는지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얻은 자유의 의미와 목적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이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갈라디아서의 문맥상으로나 성경의 기본 골격으로 볼 때 자유를 얻기 전은 율법과 세상 가치에 삶을 지배당한 삶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의 가치가 무엇인지와 자신이 세상 가치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사실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의 가치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높이 올라가는 것, 남들이 가지지 못한 희소하고 귀한 것, 다른 사람들이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성취해내는 것 같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을 추구하다 지친 삶을 두고 세상에서 지쳤다고 말하고, 추구해야만 하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이 종살이다. 그렇다면 그 종살이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다면 이런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더 엄밀히 말하면 추구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가치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7-9)

 

하지만 오늘날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구원받고 그리스도 안에 자유를 얻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가치를 추구한다. 단지 이전에는 자신의 힘이나 의지로 세상 가치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구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난센스다. 추구하는 게 같은데 방법이 바뀌었다고 가치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 기독교인이 자신이 어디에서 구원을 받아 자유를 얻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닷가에 서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처럼 자신을 압제한 것을 다시 추구하면서 자유를 얻었다고 하는 꼴이다. 이같이 자신을 종으로 삼던 것을 다시 추구한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은 구원으로 인해 어떤 것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자유라고 하는지다. 자유롭다는 것은 스스로 무언가 정하고 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었다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게 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이전과 다르게 자유로운 것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종과 아들과 같은 자유인은 행위의 동력, 즉 행동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구분된다. 종의 행동은 자신이 아닌 외부에 이유가 있다. 주인의 명이 그렇고, 육신이 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도 그렇다. 하지만 아들과 같은 자유인의 행동은 자신 안에 있는 자기 본성과 정체성에 있다. 벌 받지 않으려고, 혹은 밥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과 자기 본성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성경대로 사는 것 역시 두 가지로 나뉜다. 세상 사는 동안 육신의 복을 얻고 죽어서 사탕과 황금이 넘치는 천국 거주를 위해서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거듭난 본성대로 살았을 뿐인데 돌아보니 자기 삶이 성경대로 산 것임을 발견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당연히 전자는 종의 신앙이고 후자가 그리스도 안에 자유를 누리는 사람의 신앙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사람이 자기 본성대로 살기만 해도 성경대로 사는 것이 되느냐일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는 의미고, 그리스도로 났다면 그 생명으로 사는 모든 순간순간이 다 그리스도다. 그리고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는 책이다. 성경은 그리스도란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는 책이란 뜻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따라서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 속했다면 그 삶은 모든 순간 모든 흔적이 다 성경이다. 생각해보면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을 기록하니 성경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한 알의 사과가 the Apple 안에 있다는 것처럼, 그리스도로 났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라는 생명 세계 안에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성경대로 살기 위한 노력이나 신념은 전혀 필요 없다. 그리스도로 (거듭) 태어난 본성대로 살기만 하면 된다. 이게 어려운 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종과 달리 성경대로 사는 모든 이유가 자기 본성, 곧 자기 심령에 있는 사람이다. 의무감이나 자기 목적을 동력으로 삼아 억지로 하는 율법 생활과 완전히 다르다.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살 뿐인데 모든 삶이 그리스도와 같이 성경이 증거하는 삶인 사람이다. 그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다. 압박이나 이유 없이 자기 본성대로 자유롭게 살 뿐인데 성경대로 사는 삶, 그게 자유고, 그렇지 않으면 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