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를 받아야 의로워진다는 미혹 앞에 흔들리는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인이므로 그런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사도 바울은 권면한다. 만약 밥을 얻기 위한 의무감으로 행동하는 종과 같이 의로워지려는 목적으로 성경이나 율법의 계명을 지켜내려고 한다면 그리스도가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경고한다. 그리스도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종과 같이 되라고 한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권면한다. 방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인이니 종과 같은 삶을 살지 말라고 권면하고 바로 이어서 스스로 종노릇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문맥으로 보면 이상한 반전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이것은 너무 당연한 말씀임을 알 수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그리스도는 생명의 이름, 곧 정체성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의 본이다. 그래서 the Christ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자신의 본성이 된 사람도 그리스도(a christ). 무엇보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끌고 간 본성이 그리스도다. 이 그리스도의 본성을 안다면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이 신념을 가지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본성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씀이 안 해도 되는 것을 행하라는 권면이 아니라 거듭나므로 얻은 새 생명의 본성임을 안다. 그리스도로 났으니 자신의 모든 본성과 삶과 행동이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밖에 없다.

 

십자가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더 명확해진다.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피조물들이 스스로 정한 하나님 아들의 기준에 맞지 않다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할 때 자신을 내어주셨다.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질 이유도 책임도 없고, 세상의 모든 구속에서 자유로운 분이신데 그리스도라는 본성에 이끌려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로 자신을 낮추어 종과 같이 서로 섬길 뿐 아니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로움에 매몰되어 나에게 그 의를 주장하고 나를 구속하려 할 때 자신을 내어주는 본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이것이 정상이다. 아니 유일한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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