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맹인을 고치신 예수 (2)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치유 Date : 2013. 4. 24. 11:13 Writer : 김홍덕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지 못하다가 알게 된다는 것은 마치 어두운 방안에 들어가서 이것저것에 부딪히고 다치듯 세상에서 곤고한 삶을 살다가 빛이 들어오면 그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과 화목하게 되어 서로 부딪힘도 없을 뿐 아니라, 방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그 목적에 따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라”하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과 부딪히지 않듯 세상의 모든 것과 화목하게 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안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 그것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들 중에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데 어떤 시비에 휘말리고 또 주변의 사람들과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힘들어 하는 모든 것은 마치 어두운 방에 들어 간 것과 같이, 또한 빛을 인식할 수 없어서 맹인이 된 사람들의 험난한 삶과 같은 것이다. 그렇듯 우리가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단 한가지이다. 그것은 <빛>이 없기 때문이다. 


이 빛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개념과 인식에 대한 빛이다. 즉 세상의 섭리와 세상의 존재 목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일어나는 것이며, 그렇게 우리가 세상에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면서 곤고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육신의 눈은 보인다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보면 다 맹인과 같은 것이다. 이는 육신의 눈은 물리적인 빛이 있어 형상을 인식하듯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빛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다 맹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때 맹인이 세상을 사는 것과 같이 험난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 내가 존재하는 이유, 왜 사는가 하는 것을 모르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 맹인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맹인이 모르는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그 하나를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 다 맹인이라고 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맹인을 고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만드셨는지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보내시고 그 그리스도의 직임으로서 맹인을 고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치신 이유이고, 오늘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관점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나에게 그렇게 다가 올 때, 비로소 나에게도 예수님께서 맹인을 보게 하신 것이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살다가 한번쯤은 ‘내가 왜 사는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나라를 위해 산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식들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그러다가 한 번씩은 그것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위하여 산다고 하는 나라나 자식들을 위한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다다랐을 때 답을 찾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의자를 위한 의자는 없다.”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의자는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의자가 동급의 의자들을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자기의 삶을 자기가 선택해서 삶 속에 들어온 사람이 없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목적이 자기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같은 사람에게, 같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존재하는 것 역시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드는 모든 것, 자동차나 항공기나 컴퓨터나 또는 어떤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만들고 운영한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든 물건들을 위하여 만들지 않는다. 자동차 수리용 공구는 자동차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 같아도, 결국은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수리를 하는 것이니 그것 역시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자식과 같이 사람을 위하여 산다고 해도, 부모라고 해서 자식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니, 그 보다 더 위에 사람을 지으신 이가 계시고, 그 분이 우리의 존재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지으신 목적을 모르면 사람은 빛이 없는 것이다. 자동차가 그 존재 목적을 상실하면 가망이 없는 것이다. 자동차가 존재 목적을 상실했다면 그것은 운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결과는 폐차장 밖에 없는 것이듯, 사람도 그 존재 목적을 상실하면 빛이 없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사망 가운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우왕좌왕 하면서 인생을 고난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목적을 모르는 것이며 그것이 빛이 없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맹인인 것이다.


또한 그렇게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생의 목적을 알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인 것이다. 즉, 자신이 창조된 목적을 모르는 맹인인 인생들에게 그 목적을 알게 하여 그것에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이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인지했다는 것이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지 못하던 인생에게, 마치 컴맹에게 컴퓨터를 알게 하여 주듯이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맹인인 우리를 눈 뜨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말씀 하셨다. 물론 그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많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말씀 하셨다. 이것에 대하여 요한 사도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이라고 하셨다. 즉, 맹인은 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맹인이니,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모든 인생은 다 맹인인 것이다. 육신의 맹인은 어쩌면 맹인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보게 하는 세상은 무엇이며, 예수님께서 비취시는 빛은 우리에게 무엇을 인지하게 하고 무엇을 알게 하며 무엇을 보게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존재 목적이며, 그것을 설명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으니 그 만드신 목적을 다 가지고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 목적을 아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맹인인 우리가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치유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것을 성경은 <태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즉 세상이 시작하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창 1:2)이라고 빛이 있기 전의 상태를 말씀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맹인의 상태인 것이다. 맹인은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공허하며 그 모든 것이 흑암으로 인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먼저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빛이 있으라고 하신 것은 인식이 있으라 하심이다. 그것은 무엇을 인식하고 무엇을 알게 하는 것에 관한 인식이냐 할 때, 바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며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을 말씀하심이다. 즉 하나님의 빛이 임하여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 바로 한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태초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병자를 치유하시는 것으로 설명하면 바로 맹인이 고침을 받는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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