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중풍병자의 치유 (1)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치유 Date : 2013. 4. 25. 13:20 Writer : 김홍덕

성경에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병자 중에는 중풍병자들이 있다. 그런데 이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에 대하여는 다른 병을 고치시는 것에 비하여 제법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세하게 다루고 비중이 있는 사건을 들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마가복음 2장 1절에서 12절에 나오는 사건을 들 수 있겠다. 이 사건은 요한복음을 제외한 공관복음 전부에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집에 계실 때에 중풍병자를 치료하고자 네 사람이 병자를 침상에 들고서 왔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이 계신 집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그 지붕을 뜯고 위에서 내려서 고침을 받은 사건이다.


이 치유의 사건은 영적으로 중풍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과 더 나아가서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악한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복음서에 상세하게 기록된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예수님의 치유가 단지 예수께서 육신의 병을 고치시는 분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물론 성경을 알고 보면 모든 것이 비유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보이는 사건은 표현이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오신 메시야이시니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육신으로 중풍을 본다면, 뇌 질환이다. 뇌의 혈관에 이상이 생기거나 터져서 뇌의 기능 일부를 수행하지 못함으로 몸의 마비가 발생하는 질병이다. 그것은 사람이 머리로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으므로 마비가 되는 것이다. 즉, 사람의 생각이 몸으로 나타나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 바로 중풍인 것이고, 중풍병자라는 것은 머리의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가버나움의 중풍병자 역시 그 머리의 생각이 몸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혼자 걸을 수 없어서 네 사람이 들것에 뉘여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 하신 말씀이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다. 아니 중풍병과 죄가 무슨 상관이 있어 그렇게 말씀 하신 것일까? 이 말씀을 읽으며 그 사람이 많은 죄를 지어서 그 벌로 중풍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아주 많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 말씀이 아니다. 


죄의 원어는 하말티아(Hamartia: 헬라어)이다. 이는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것은 화살이나 창은 과녁에 맞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과녁을 벗어나 버린 상태를 “죄”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자리를 이탈한 상태를 죄라고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즉, 그것은 어떤 행위가 잘했느냐? 잘못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너는 누구이냐?’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에게 주어진 자리와 정체성이 있는데 그 자리에 네가 있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담이 범죄 하여 숨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라고도 하지 않으시고,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하신 것도 아니라,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이다. 그것도 이미 대화할 수 있게 아담을 찾아 와서 물으신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 숨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담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인 인간이라는 자리를 벗어나서 뱀에게 꾀여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 했다는 것, 그것은 사람의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마치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 그것이 바로 죄인 것이다.


그리고 어떤 존재에게 그 존재가 있어야 할 자리, 즉 정체성을 정하는 이는 자기 자신이 아니다. 인생은 그 누구도 스스로가 자기의 출생을 정할 수 없고, 심지어 그 부모도 자식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인간이라도 자신이 세상에 들어온 이유를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부모가 가진 것도 아니다. 부모가 사람의 존재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존재가 가진 목적을 알아야 한다는 세계 안에서는 자식이나 부모나 다 같은 존재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