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 행위규범 vs. 존재규범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질그릇의 선택 Date : 2020. 9. 14. 04:00 Writer : 김홍덕

앞서 언급했듯 자신을 죄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양심상 당연히 죄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 어떤 법에 의해서 자기 행위는 심판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가 정죄를 받아 죄인이 된다. 그렇게 심판하는 법은 당연히 행위규범이다. 행위를 정죄하니 행위규범이다.


그러면 문제는 행위규범이 하나님의 법이냐는 것이다. 하나 님은 행위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데, 행위로 자신을 심판하므로 죄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하나 님과 생각이 다른 죄다. 하나님은 존재의 신이시니 하나님의 법은 당연히 존재규범이다. 존재의 정체성이 존재 목적과 일치하는지가 심판의 기준이다. 목적에 맞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행동도 정죄하지 않는 것이 존재규범이다.


이 두 규범 중 행위규범은 “무엇을 하였느냐”를 묻고 심판하 고, 존재규범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심판한다. 행위로 정죄 받는 자가 그 법을 다 지킬 수 없다면 존재의 법 아래로 가야 하고, 존재의 법을 지킬 수 있다면 행위의 법 아래로 가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위규범만 알고 존재의 법은 어둡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그나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믿는 것마저 하나님께 행위의 열매인 공로를 드리고 행위의 주체인 육신의 평안과 성공을 구한다.


문제는 행위규범 아래에서 당당히 법을 지켜서 죄 없는 사람 으로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태초 이래로 그렇게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고, 사람들이 고백하고 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마저 자신의 행위를 인하여 정죄 받고 있다. 자신이 행위규범을 섬기니 자신의 행위를 정죄하고, 그렇게 죄인이 되어서는 구원받았다면서 죄 없다 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처럼.


이 죄책감을 해결하려면 법이 바뀌어야 한다. 자신을 심판하는 법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행위가 정죄의 대상이 아닌 법을 가진 세계로 가야 한다. 그것이 법을 바꾸는 것이다. 무엇을 했느 냐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목적에 맞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법과 의의 기준인 세계로 가야 법이 바뀐다. 나의 존재 정체성, 가치관, 생명과 안목이 행위를 정죄하는 법이 아닌 생명의법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법이 그렇다.


그렇게 하지 않고 행위규범 아래 계속 있으면 언제나 나의 행위를 심판하므로 정죄함을 벗을 수 없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구원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구원은 죄사함을 받는 것인데, 정죄함이 끊이지 않는 법 아래서 구원을 확신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구원을 믿으려고 애쓴다. 신념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구원받았는데 죄 없다 말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이 바뀌어야…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 생명의 법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법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선택은 육신이 사는 동안 해야 한다.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행위규범의 세계에서 존재규범의 세계로 가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 먹은 선악의 기준으로 자신을 심판하여 스스로 죄인이 되는 세계에 있었음을 고백하고 존재의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떠나야 한다. 그 선택이 시작이다.


육신은 충분히 그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 님의 세계는 그 선택을 위해 너무 잘 펼쳐져 있고,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시대나 상황을 핑계로 하나님을 듣지 못했다고 할 수 없다. 성경책도 성경책이지만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하나 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그 만드신 모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롬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