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대한 담론 - 나는 구원 받았을까?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20. 8. 31. 11:20 Writer : 김홍덕

예수를 믿을수록 구원은 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구원의 기준은 생각보다 엄격한 것이라는 것을 점점 믿게 된다. 그리고 구원의 기준이 엄격하다고 할 때 그 엄격함이란 우리가 흔히 보는 교회들, 어느 날 어떤 이유로 출석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세례문답 교육을 마치고 부활절 혹은 추수감사절 언저리의 어떤 주일에 받는 세례를 구원의 기준으로 여기는 것보다 좀 더 엄격한 것일 수도 있고, 그런 형식적이고 율법적이며 하나님께 삶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목적인 일반 종교적 신앙 안에서는 생각해보지도 못하는 세계에서도 범접하기 힘든 엄격함일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구원의 기준이나 자격에 대한 사설, 구원이 무엇이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무엇을 담보하는지에 대한 담론은 1+1=2라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를 산수 이상의 논리로 끌고 가려는 시도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을 한 번만 사는 인생의 목적과 희망사항에 가깝다고 해도 아무도 증명할 수 없지만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의 문제로서 여기거나 신앙하는 사람에게 구원은 사실 유일하고 절대적인 문제이다. 구원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문제로 심각하게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설사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자기 입으로 믿는다고 해도 다 회칠한 무덤과 같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원은 너무 쉽고 단순하며 그야말로 길가다 줍는 돈과 같이 쉽게 얻어지는 것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교회에서 말하고 심지어 강요하다시피 전하는 구원이 어떻게 베풀어지게 되었는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국한해서 봐도 그 절대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아버지가 지은 피조물의 손에 죽임을 당하므로 베풀게 된 구원이다. 그것도 당시 최고 극형인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말이다. 설사 그 덕에 구원이 쉬워졌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구원이라는 개념의 성립을 위해서 지불한 값은 지금 기독교인들이 의미도 모른 체 세례문답식에서 몇 개의 답에 형식적인 답으로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은 아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신앙인들이 구주로 믿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바쳐 따르겠다고 하는 예수께서 자신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다는 점이다. 십자가를 지므로 구원을 얻게 될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가 있으니 그것을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구원을 베푸시면서 그 대가처럼 말씀하신 그 말씀은 한 편으로 생각하면 진정한 구원의 자격, 구원의 기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구원을 베푸니 너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는 자들을 위하여 내가 십자가를 지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가는 삶이 구원 받았다는 증거와 자격과 기준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 아들이 십자가를 져야 얻을 수 있는 구원이 쉬운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구원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삶이 그러한가? 무엇보다 받았다는 구원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가서 받은 것인지, 아니면 세례문답에 정해진 답을 공개석상에서 인정하면 되는 더할 나위 없는 간편한 방법으로 받은 것인지 반추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구원에 대하여 이와 같이 깊이 있는 상고가 필요함에도 그냥 구원은 받은 것이라 여기면서 구원의 증거나 확신에 대한 묵상은 그냥 덮고 넘어가려니 성경을 깊이 알 필요도 함께 덮여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구원은 너무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라 다시 들먹이는 것은 괜한 분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모든 기초와 출발이 구원이라는 것은 불변이다. 그렇기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신앙에 있어, 성경이 의도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의문을 없게 하는 것이다. 행여 의문이 생겨도 자기 삶으로 또 묵상함으로 속에서 생수가 넘쳐듯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구원 받은 증거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줄 알면 그 속에서 생수가 넘쳐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와 그 보내신 목적과 그 목적대로 사는 것에 있어 의문이 해결되지 않고 마냥 노력만하고, 예수님과 자신은 다른 존재이기에 노력하는 것으로 모든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면 구원이 없는 것이다. 자기 안에서 삶의 목적과 살면서 마주하는 일들의 의미들을 깨우칠 본성이 없다면 그건 구원이 없다는 증거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경을 공부하는 신학은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그의 보내신 자에 대하여 또 그 보내신 목적과 의에 대하여 알지 못함을 자인하는 집단의 허울이다. 행여 신학교를 졸업하면 그것을 깨우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은 다 아는 바 아닌가?


구원은 기초 같지만 뿌리고 신앙의 시작이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구원은 신앙의 종착지나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땅에 살 동안 예수님과 같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죽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죄 없다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의 행위가 자신을 정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정죄함에 자신이 반복적으로 뉘우치는 것은 신앙의 경건이고 예수님과 같이 되려는 노력으로 믿고 있다면 구원받은 삶이 아니다. 어쩌면 신앙은 바로 이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을 지나노라면 구원의 자격이라 할까? 아니 구원의 기준이라 할까? 그 자격과 기준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분명한 것은 세례문답으로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생명을 얻는 것인데, 생명을 얻었다면 그 생명의 본성이 이끄는 삶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도 본성도 그 본성이 이끄는 삶도 없는데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일 뿐 아무 것도 아니다. 아니 도리어 더 위험하다. 없는 것을 가졌다고 착각하고 있으면 구원을 얻으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이 이끄는 삶이 없는데 어떻게 구원 받았다 할 수 있나?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하여, 또 성경에 대하여 더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을 먼저 돌아봄이 바람직하다.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는 것이 먼저라는 말이다. 어떻게 돌아 볼것이냐고? 



먼저 당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하는지를 돌아보라. 

자신과 자신의 가족 또 사랑하는 이들의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니다. 왜냐고? 하나님은 그런 것을 본질로 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곧 존재의 신이시며 나타난 것은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신의 평안과 세상의 성공이 하나님 축복이 아니고, 또한 환난과 실패가 하나님의 벌이 아니다. 그게 벌이라면 사도들은 어떻하라고? 십자가를 진 예수님은?



또 당신의 말을 들어보라. 

주변의 어떤 이의 세상 일이 잘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지, 또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가 속한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일을 당했을 때 ‘내가(그가) 하나님께 무언가 잘못한 것은 없나?’ 돌아보거나 걱정하는 말과 생각을 하는지. 그렇다면 그 또한 구원받은 삶이 아니다. 하나님은 행위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은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 답하지 못한다면 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구원도 없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죄를 어떻게 사함을 받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이 죄를 사했다는 구원을 받았다면서 아직도 스스로 죄 없다 말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구원은 없다. 단언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구원의 자격을 사람의 말과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그분의 구원을 알 것인데, 앞서 열거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들춤에도 자신의 구원을 외면한다? 그게 바로 성령을 훼방하고 양심에 화인 맞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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