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박스, 흰 박스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교회 Date : 2024. 3. 10. 23:16 Writer : 김홍덕

얼마 전 일이었다. 큰아들이 이번에 나온 스마트폰을 샀고 이전에 사용하던 전화기를 중고 시장에 팔기로 했다. 평소에 전자제품의 박스를 웬만하면 모아두기에 사용하던 전화기 박스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분명히 보관해 두었다고 생각한 박스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그 박스가 흰색이라고 생각했기에 흰색 박스를 찾았는데, 정작 그 박스는 검은색이었다. 보관해 둔 박스를 모두 꺼내 놓고 하나씩 찾은 결과 검은색으로 된 박스를 찾을 수 있었다.

 

곤경에 빠지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영화 '빅 쇼트')

 

인생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도 어쩌면 이와 같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인생을 힘겨워하지만, 인생을 주신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내가 검은색 박스를 흰색이라고 생각했듯이 사람도 인생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복을 주시려는데 사람은 인생을 힘겨워하니 그렇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쩌면 정상이다. 그들의 세계관은 인생은 힘들다고 정의하고 있고, 그 힘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찾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걸 삶의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겐 좀 다른 이야기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 복 주시기를 원하시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천국이 이미 임하였다고 하셨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인생을 힘겨워하는 건 생각해 볼 여지가 상당하다. 여기에 더해서 그 힘겨움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건 성경과 배치된다. 인생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니까?

 

기독교인이 인생을 힘겨워하는 건 하나님의 뜻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다고 채무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일은 생기지 않는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인생의 무게로 누낄 수밖에 없는 문제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이 바뀌면 문제도 달라진다. 이건 아주 신비한 세계지만, 성경은 <거듭남>이라는 말로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이 구원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니까 여상한 인생의 문제들이 다르게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게 구원이란 말씀이다. 이건 그렇지 않다면 구원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것을 심각하게 묵상해 봐야 한다.

 

여기서 오늘 정말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 바로 성경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연 인생의 여전한 문제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는지 여부다. 이건 구원의 기본 상태이다, 그리고 구원은 성경이 성취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므로 구원받았다는 건 곧 성경을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는지를 반추해 봐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설교한다면 설교하는 이가 과연 그런지 검증하고서 들어야 할 것이다.

 

검증은 간단하다.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문제에 관한 설교는 단 두 가지 부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라는 설교와 인생을 다르게 보이도록 나를 바꾸어 주실 거라는 설교, 이렇게 둘 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설교는 전자에 속할 것이다. 어느 교회 어떤 목사를 만나도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문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니 이를 믿고 기도하라고 한다. 심지어 나름 깨어 있다고, 오늘날 교회가 상업화되었고, 복음적이지 않다는 깨달음을 주장하며 새로운 신앙과 교회의 모델을 개척하는 사람들도 이 범주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과 인생의 문제에 관한 설교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꿔 주실 거라는 설교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설교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문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는 신앙은 검은 핸드폰 박스를 흰색이라 착각하고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시라면 예수님의 잔을 물리셨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알듯이 그런 일은 없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바꾸는데 있다. 더 심각한 건 이렇게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으면서 이를 주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걸 주장하기 좋은 지위와 위치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건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아주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도 이 상황을 매우 우려하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마 24:15-16)

 

하나님은 사람을 바꾸시는 분이시다. 더 정확히는 탕자처럼 자기 자리를 떠난 사람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기를 바라시고 도우시는 분이시다. 그렇게 사람이 바뀌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사람이 세상에서 문제를 겪는 건 자기 정체성, 존재의 목적을 벗어나 자기가 정한 목적대로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바뀌면 그의 세상도 바뀐다. 자고로 설교는 이래야 하고, 성경을 이야기함도 이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검은 박스를 휜색으로 알고 찾는 것과 같은 어두움일 뿐이다. 말 그대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야 구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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