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주제로 다룬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를 통해 말씀하고자 한 의로워지는 행함과 믿음이란 주제 속에 이 말씀이 있다는 것을 쉽게 망각한다. 이 성령의 열매에 대한 말씀은 분명히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말씀 속에 있는 말씀이다. ‘열매라는 단어가 그 연결고리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성령의 열매는 모두 선하고 거룩한 것이라 인식된다. 즉 성령의 열매는 곧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신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열매들을 맺으려고 <노력>한다.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성도들은 노력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거룩한 열매를 맺으려는 그 일반적인 모습이 오늘날 신앙인들이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열매를 노력으로 맺으려 하기 때문이다.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신앙은 생각보다 이렇게 뿌리 깊다. 이것은 부지불식중에 범하는 어떤 오류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어두움 그 자체다. 이 상황을 정말로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행위로 의로워지는 신앙은 단순히 신앙의 부족함이나 미숙이 아니라 구원을 얻지 못한 신앙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분명히 행위로 의로워지는 신앙의 법인 율법은 범법자를 위한 것이라 선언했다. 이렇게 분명한 말씀이 있는데 교회의 예식으로 세례 문답을 했다고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태연하게 있을 문제가 아니다.

 

앞서서 열매는 생명의 속성임을 설명했다. 이런 단어 하나하나를 간과하면 안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에 의미가 달라지는 말을 할 리가 없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모두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열매다. 노력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육체의 행위로 이루는 것은 그 자체가 성과고 공로지 열매가 아니다. 그런 신앙관과 신앙 그리고 그에 따른 신앙생활을 하면서 구원받은 줄로 여기는 것은 망상일 뿐 하나님과 전혀 무관하다. 그런 자신이 어둡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면 구원의 기회조차 없다.

 

열거된 열매들은 바울 사도의 때나 지금이나 성도들에게 경건과 의로움의 상징인 것은 같다. 바울 사도가 사람들이 의로운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을 열거하면서 이것은 열매라고 말씀한 것은 이런 것은 행위가 아니라 성령으로 난 생명이 자아내는 것임을 분명하게 강조한 것이다. 예수를 믿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이처럼 틀린 것이다. 그것은 성경의 법, 하나님의 법, 생명의 법이 아니다. 그런 신앙은 하루라도 속히 떠나야 하는 어두운 신앙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어디까지나 열매다. 생명이 가진 본성이 형상으로 나타난 게 열매다.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성령의 열매들은 맺으려 노력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성령으로 진정 거듭났다면 노력해서 이른다는 말을 이해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성령으로 난 생명이기만 하면 거듭난 그리스도의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살기만 하면 맺히는 것이 성령의 열매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말씀했다. 이 세상이 창조된 이래 생명이 그 본성을 표현하는 것을 금할 법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