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마무리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갈라디아서 Date : 2021. 10. 3. 21:14 Writer : 김홍덕

갈라디아서는 행위로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사람의 생각에 대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고 권면하는 말씀이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를 통해 행위로 의로워진다는 율법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을 위하여 아브라함의 약속을 들어 설명했고, 사라와 하갈을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율법은 범법자를 위한 것이란 말씀과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나셨다는 다소 어려운 말씀도 했다.

 

그리고 필자는 이러한 바울 사도의 말씀에 대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관점에 대하여 많이 언급했다. 오늘날 자신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지 육신이 교회에 다니는 것’, ‘세례 문답에 대답했다는 것같은 육신의 행위를 근거로 자신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임을 과할 정도로 설명했다.

 

이는 먼저 자신을 믿음의 사람으로 여기는 근거가 육체의 행위에 있으므로 거짓이다. 육체가 교회에 다니는 건 명백히 육체의 일이고, 세례 문답은 정형화된 고백이자 형식이지 자기 안에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 육체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의 단면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는 신앙이 추구하는 바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육신에 어떤 것, 육신이 도모하는 일과 건강이나 혈육의 형통함이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이것이고 믿음은 단지 육신이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 주실 것이라 믿는 것이다. 신앙의 관점도 목표도 실체도 모두 육체에 관한 것이다. 그렇게 육신의 것을 구하기에 하나님께 육신의 공로와 수고와 절제와 성경을 지키는 모습을 드리려 한다. 그나마 그 행위들도 마음이나 본성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육신의 것이 잘 되기를 바라는 소망에 얽매인 이유로 행할 뿐이다. 이것을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기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 스스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었다고 믿지만 정작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든 것이 육신의 일인 사람은 이 갈라디아서를 읽고 자신이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며 육체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을 가진 범법자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것이 오히려 이 갈라디아서의 의도다.

 

하나님께 육체의 일을 간구하고, 육체의 어떤 행위나 생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율법 아래 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갈라디아서를 바울 사도 당시 할례와 같은 율법을 주장하던 이단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으로 보고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다시 행위)하는 신앙을 다짐하는 말씀으로 보면 안 된다.

 

사람은 육신의 장막 안에 산다. 그래서 이 육신의 일이 마치 전부인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육신의 삶에 일어나는 변화를 기준으로 어떤 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으로 어떤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생각한다. 육신의 일로 하나님의 생각을 판단하는 것이 육체로 의로워지려는 생각의 뿌리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모습이 이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대부분 신앙인이 가진 신앙이 육체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이라는 말이다.

 

행위냐? 믿음이냐?’라는 말씀의 주제는 결국 나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느냐의 문제다. 여러 번 언급한 대로 육체의 일로 하나님의 생각을 가늠하고 있다면 믿음 안에 있지 않으므로 돌이켜야 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긴다는 의미기에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 그러니까 사람의 행위나 육신에 일어나는 일을 보시는 분이 아니다.

 

믿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의에 자신을 순종하는 것이지 사람이 육신으로 살아가는 동안 겪는 일들이 세상 기준으로 형통하게 해 주실 것이라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그리고 믿음은 자기 밖의 일, 자신이 손에 쥐지 않은 일,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미래가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될 것이라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밖에 있는 일에 대한 기대다.

 

믿음은 자기 안에 있어야 한다. 자기 안에 생명이 있어 부인할 수 없는 본성을 인지하는 게 믿음이다. 성경이 괜히 거듭났다는 표현을 쓰고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고 하신 게 아니다.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하신 말씀이고, 속 심령과 같지 않은 표현과 말을 거짓이라 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에서 생명이 되어야 믿음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