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 그들이 선악과를 먹고자 한 마음인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 선과 악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마음이 육신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다. 왜냐하면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다음에 낳은 그들의 속심령 곧 본성이 성육신 된 존재가 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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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온 인류를 대표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까마득한 옛날의 한 살인 사건이 오늘 나의 이야기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나도 모두가 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이라서 성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역사 이래 모든 사람은 그 마음에 선과 악을 구분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면 그 마음 안에서 가인과 같은 마음도 있고, 아벨과 같은 마음도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면 분명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안에는 누구나 가인이 제사는 받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처럼 "이것은 이래야 한다"는 마음이 있고, 그것은 돌아서서 후회하기도 하는 자아의 뜻을 아벨을 죽이듯 무시하고 "이래야 한다"는 의를 표출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가인과 아벨이 주는 교훈인 것이다.
그렇듯 사람 안에 누구나 가인과 같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농부라고 했다.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도 "자기의 근본인 토지를 갈게 하니라(창 3:23)"이라고 하셨는데, 이 또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서 재미 있는 것은 토지를 보고 하나님께서 <아담의 근본>이라고 하신 부분인데, 이것은 아담이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할 때, 땅에서 나는 것, 즉 사람에게서 나는 것을 먹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은 사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 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과 가인은 농부였는데, 이는 사람이 사람을 경작하는 것, 즉 사람이 인정을 받기 위하여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의 세계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오늘 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나 분명하게 설명하시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런 사람, 사람에게 인정 받기 위하여 사람을 경작하는, 그러니까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사람이 만든 법과 규칙에 열심인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가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자신의 그런 수고가 하나님께서 열납하셔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지금의 교회들이 보여 주는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 안에 있는 논리들이 얼마나 사람이 경작하는 법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큰 교회>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화려함과 위대한 모습을 갖추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큰 교회고, 사람의 법을 경작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명제가 얼마나 오염된 것인지, 또한 세상에서 세상의 법을 따라 살아서 그들의 기준에 따른 성공해 놓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바로 가인의 제사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제사는 가인의 제사와 같이 받아질리가 없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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