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4:1-5)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9. 14. 22:04 Writer : 김홍덕

일상에서 어떤 전환을 결정해야 할 일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 중에서는 직장을 옮기는 것과 같이 중대한 일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두 가지의 케이스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 자리가 있어서, 가야할 곳이 자신의 소망 중에 있었던 것이어서 가는 경우가 있고, 또 하나는 지금 있는 자리가 싫어서 전환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직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것은 문제 축에도 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어떤 신앙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새로운 신앙적 안목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은 이때껏 다닌 교회가 싫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떠나기 일쑤입니다.


그런 전환은 신앙이 발전하지도 않는데 다니는 것이나, 또 교회의 일들에 대하여 비판을 하면서 다니는 것과 같은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지만 교회를 옮긴다고 해도 보통은 여의치 않고 다시 그런 전환을 반복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그 신앙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갈 자리를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아비 집을 떠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나는 것과 같이 자신이 확실하게 의지할 부분 없이 단지 현재 신앙에 만족하지 못하여 떠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도 앞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온 높아지려는 신앙,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의 말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언이 여기까지라면, 단지 떠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전부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새 가치관과 하나님을 보는 안목을 보이심으로 그것을 좇아서 이전의 신앙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데 그것이 어떤 새로움인가 싶겠지만,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미가 선지자가 책망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수용하고 순종하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으려는 수작에 불과한 믿음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싶다면 오늘 자신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했는지를 돌아보면 됩니다. 취업이나, 시험이나 혹은 자녀의 건강이나 사업과 같은 것을 구했다면, 또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실수 없이 경영하시는 세상을 걱정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면 이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단지 자신이 규정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여기는 것일 뿐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예언을 시작하면서 사마리아가 야곱의 허물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마리아가 혼혈(강제적인)의 결과로 인함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세상의 가치관을 섞는 간음을 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이나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바라고, 육신이 더 평안해지는 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사마리아와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가치관이 지향하는 성공과 복락을 추구하듯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그것을 추구하는 것과 신앙을 접목함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크게 지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사람들과 교회들은 다 미가 선지자가 책망하는 야곱의 수치 곧 사마리아요 간음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신앙에서 지친 사람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기만 해도 그것이 온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런 신앙의 말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성공이라는 각종 높은 산보다 여호와의 전이 더 꼭대기에 서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것을 좇아서 아브라함과 같이 이전 신앙을 버리고 그 신앙을 향하여 여호와의 산에, 하나님의 전에 이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예수님의 이름이 세상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세상에서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바로 예수님의 정체성이며, 그 예수님의 정체성이 바로 세상의 모든 가치관들보다 더 온전하고 높은 것임이 보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순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작은 것 하나, 술 마시는 자리에서 술안주로 나온 대화 주제 하나에서도 자신이 더 옳고 높다고 주장하여야 만족하는 사람이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님의 정체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가 선지자는 세상과 간음한 신앙에서 벗어난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이전까지는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세상의 성공을 바라던 것에서 예수님과 같이 세상의 의 앞에서 죄인이 되고 실패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서 그것이 세상의 모든 가치관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전에서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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