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 2

(마가복음 4:30-34) 겨자씨 비유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6. 23. 16:51 Writer : 김홍덕

겨자씨 비유는 비유 자체로는 어렵지 않다. 다만 하나님의 나라가 혹시 숨이라도 크게 쉬면 날아가 버리는 작은 겨자씨처럼 작은 것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믿는 건 어렵다. 하나님 나라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심이다.

 

하나님 나라는 크고 위대하다는 게 사람의 생각이다. 교회를 크고 화려하게 건축하는 게 하나님의 영광이라 말하는 이유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선 초라한 모습의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인정할 수 없다. 결국 이 생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

 

결국 교회를 화려하게 건축하는 게 하나님께 영광이란 생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하나님 나라는 크고 위대한 업적으로 세워진다는 사람의 생각이 그렇다. 많은 봉사와 십일조 그리고 헌금이 천국에서 고래 등 같은 집을 상으로 받을 것이란 믿음도 이 생각의 산물이다. 이게 사람이 가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진심이다.

 

겨자씨 비유는 이런 생각이 고착된 사람 앞에 예수님께서 던진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가치 없는 게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이룬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는 위대하다 믿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가치관의 연장선 위에 있지 않고, 오히려 낮고 천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하여 풍성해진다는 걸 알려주신 게 겨자씨 비유다.

 

지금 읽고 듣고 있는 말씀을 예수님 말씀처럼 헤아려본다면 겨자씨는 바로 십자가란 걸 알 수 있다. 사람의 생각에 겨자씨처럼 함께 살아갈 가치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을 보내는 곳이 십자가다. 십자가를 진 당사자인 예수님의 말씀이니 더욱 그렇다. 그렇게 천한 자리에서 풍성한 안식과 만족을 누리는 삶이 하나님 나라의 삶이다.

 

높이 오르려는 사람에게 낮아지는 십자가는 겨자씨와 같이 보잘것없는 것

 

사실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높이 오르려는 몸부림 속에 지쳐 있고 그 삶에 안식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잘 헤아려보라고 하셨다. 어디까지 올라야 만족스러운 인생이 되는지조차 모르면서 하염없이 위로 오르려는 게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의 그런 모습이 곧 공중의 새다.

 

그런 인생에게 안식과 만족을 주는 자리가 십자가다. 예수님 말씀은 결국 여기에 귀결된다. 이걸 아는 게 성경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알기까지 헤아려야 한다. 묵상해야 한단 뜻이다. 사람이 보기에 터무니없는 말씀, 낮은 곳에 만족과 안식이 있다는 이 겨자씨 같은 말씀이 사람의 심령에 심겨서 자라면 그 사람으로 인하여 정처 없이 살아가던 사람이 안식을 누린다는 게 하나님의 법이다. 그리고 이 법이 다스리는 나라가 풍성한 하나님 나라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라 말하고, 죽으면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에 동의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고 명백한 것이지만 사람들이 자기 육신의 안목으로 눈이 어두워져 이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신들이 바라는 바가 자기 능력으로 다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대책과 수단으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냉소적인 말 같지만 사람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서 돈 달라 밥 달라 배우자 달라 좋은 직장 달라 아픈 가족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모든 기도의 핵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은 나라를 위하고 교회를 위하고 가난한 나라에 간 선교사를 위하여 또 그 선교 사업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한다면서 자신들은 자기 육신의 소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도 합니다만 그들이 위한 나라와 교회와 선교지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바라는 것 역시 육신이 잘 먹고 잘 사는 소망에 관한 것이니 다 같은 것이라는 것을 외면하거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일 뿐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그 믿음이 하나님께 유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신을 다스리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육신을 자신의 의와 뜻대로 얻은 것도 아닌 인생들이 그 육신의 바람과 소원을 하나님께 얻는 것이 믿음이 아니며 또 그렇게 얻을 수 있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와 뜻이 주관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삶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면 아이 때부터 부자에 대하여 배우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 나라의 의가 자본주의고 민주주의기 때문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을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건축자와 같은 세상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린 돌과 같이 여기고 예수님과 같이 육신을 소비하는 낮은 자리로 가는 삶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가서 자신이 낮아지기를 기도하듯 하니 자신은 예수님을 버린 돌과 같이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미안하게도 그 신앙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자신들의 가족들이 평안하기를 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얻으려면 낮아지고 그것을 버리듯 하면 얻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신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자비와 긍휼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지신 의와 안목이 자신의 것이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의와 생각과 안목을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은 성경책의 문자대로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생명이 되면 그 의가 본성이 되니 속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설사 원치 않아도 하나님과 같이 보고 하나님과 같이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한 나라의 의에 속하여 그 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본성이 어떤 것인지만 알면 됩니다. 그것을 알고 그것에 순종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의(말씀)가 육신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예수님을 보내셔서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하고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나라이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살 것이라는 것은 세상에서의 방식입니다. 천국에서 기와집은 뭐하려고? 집값이 오르기나 할까요? 오르면 또 뭐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앞서 베드로 사도가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온 것들이 자신의 본성이 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사도의 말과 같이 이전과는 다른 의로 사는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자기 의로 세상에서 성공하려다가 예수 믿고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것은 새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도구만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새롭게 되어 이전과 전혀 다르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삶의 목적과 의미가 전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세상의 성공이나 육신의 복락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의롭게 여기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성공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분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다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만드신 것을 인하여 영광스러워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고 의롭게 여기는 것은 세상을 만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과는 반대라서 세상의 가치 기준을 가진 건축자가 볼 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인데 그것이 의롭고 영광스럽고 귀한 본성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성도들에게 이전에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전에는 세상이 가진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서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의로운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래서 하나님께 그것을 기도하고 바랐는데 이제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세상 가치관으로 보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고 영광스럽게 여기며 의롭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과 다르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