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장 1-4절) 하나님의 아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9. 5. 12:24 Writer : 김홍덕

아들이라는 것은 그 부모의 의와 유전자가 표현되어 부모와 동일한 존재로 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존재가 아들인 것이다. 그것은 비단 육신에 관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벤허에서 벤허가 사령관 퀸투스 아리우스의 양자가 되는데 이것은 퀸투스 아리우스가 가진 뜻을 벤허가 육신을 가지고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을 아들이라고 한다. 이것은 세상에 아주 많은 일이다. 즉 어떤 사람의 생각과 뜻을 표현하는 사람을 아들이라 부르는 일이 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는 육신의 혈통이나 호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육신이 없으시므로 혈통으로 아들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우리는 오늘 성경을 떠나서 살아도 된다. 우리가 무슨 수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불가능한 신앙을 가지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에 공로와 재물이 필요한 것도 역시 아니다.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겠지만, 널리고 널린 것이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보고 교회에 봉사해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신앙, 돈을 가져야 장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정책, 그리고 세상에서 성공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생각 이런 것 어느 하나에라도 속한다면 이는 공로와 소유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건 종이 주인에게 인정받는 방법이지 아버지에게 아들이 되는 방법은 아니다. 즉 한마디로 종의 신앙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다. 그것이 사람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 뜻이 있었기에 사람이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형상은 이미지다. 즉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창조된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들이다. 즉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표현하는 것이 사람의 존재 목적이고, 누군가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을 보면 ‘나는 도저히 너처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미지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을 보고 ‘우리는 저렇게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다. 그러면 우리에게 구원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다. 우리도 십자가에 달리면 피 흘리고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누구나 하는 것이다. 그게 육신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볼 때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모습이 저 모습이라는 깨달음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육신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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