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장 1-4절) 사귐(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1서 Date : 2014. 9. 8. 07:37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적 중에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을 먼저 생각한다. 사람은 물 위를 걸을 수 없는데 예수님은 걸으셨고, 또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는데 예수님은 살리셨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이 예수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나타내시기 위한 과정이지 예수님의 정체성이 아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궁극의 정체성은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은 여느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아 놓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명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적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이 사귐이 있다는 증거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가진 육체와 마찬가지로 죽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무능하거나, 아니면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신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한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보니, 스스로 내려오지도 못하는 육신을 가진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더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기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그것은 전초전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기적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시고, 그리고 보여주신 가장 놀라운 기적은 바로 육신을 가진 인생이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여 같은 성품을 가진 존재가 되는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이었다.


사람에게 있어 기적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제자리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볼트 하나도 그 자신에게 있어 가장 놀라운 축복은 자신이 존재하게 된 목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자신이 만들어지거나 존재하게 된 목적에 부합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가 볼 때는 보잘 것 없고 한계와 부족함 그리고 연약한 육신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그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늘 아무 것도 아니고, 스스로는 자신이 육신이라는 것을 저주하고 그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처럼 되려 한 인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스스로가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기까지 했던 자신의 운명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는 것 그것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기적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자신이 기적을 주관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시고 그 기적이라는 연결 고리의 완성이자 궁극의 모습을 십자가에 달리셔서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바로 그 기적, 바로 그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두신 뜻을 예수님이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의 생각과 의를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 된 사귐을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의 사귐이고,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그런 사귐을 육신을 가진 요한 사도에게 보여주심으로 요한 사도가 그것을 만진 것과 같이 자신도 그런 사귐이 있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과, 또한 예수님께서 그 사귐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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